신문로
정보공개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사건 수사나 정보 수집, 그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을 하는 데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로 '특활비'라고도 한다." 특수활동비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특활비는 별도 증빙이 필요하지 않고 사용 기록도 공개되지 않아 가장 불투명한 예산으로 꼽혀왔다. '검은 예산' '눈먼 돈'으로 불리며 투명성 요구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특활비와 관련해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언론사 '뉴스타파'와 시민단체 '정보공개센터'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등이 검찰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에 이어 지난 15일 항소심 재판부도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원고가 청구한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지출한 특활비 등의 내역과 증빙서류를 공개하라는 판결이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는다면 이 재판은 검찰에 대한 첫 정보공개 승소 기록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검찰 예산 정보의 빗장을 풀어낸 사상 최초의 판결로서 의미가 있고, 그것도 민감한 특활비에 대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이 소송을 이끈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검찰개혁의 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검찰 예산 빗장 처음 연 의미
정보공개에 관한 한 검찰은 가장 벽이 높은 곳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소송의 계기가 된 정보공개청구가 이루어진 때가 2019년 10월이다. 검찰이 정보공개를 거부하면서 그해 11월 소송이 시작됐고 1심 선고까지 2년 이상이 걸렸다. 항소심 선고까지는 3년을 끌었다. 하 변호사에 따르면 검찰은 특활비 정보를 보유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처음에 거짓말하는가 하면 변론 기일 연기 신청을 여러번 하는 등 시간 끌기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검찰공화국' '검찰정권'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검찰권이 절정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검찰의 권한과 역할의 크기만큼 그 활동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특활비 공개는 그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활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에서 사법부는 공개 쪽에 무게를 실은 판결을 주로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권력기관은 계속 공개거부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 점에서 이번 판결은 검찰도 정보공개법과 무관하게 자료를 비공개할 수 있는 특권조직이 아니라 똑같이 정보공개법의 적용을 받는 행정관청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킨 셈이다.
특활비 공개와 관련해 청와대와 국회는 검찰보다 앞서 소송전을 겪었다. 국회는 2017년 하 변호사의 정보공개청구에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가 소송을 당해 패소했다. 2018년 7월 서울행정법원의 공개 판결에 항소했다가 취하하고 여야 합의로 특활비 자체를 폐지했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시절 하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 시절 한국납세자연맹이 각각 특활비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거부되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두 청와대 모두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해당 기록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버렸다. 그렇게 되면 소송은 각하되고 그 기록을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15년 동안 보호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8년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이를 시행한 정보공개 선도국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보공개에 대한 국민 인식과 욕구도 크게 성장했다. 반면 정보공개의 대상인 행정기관의 인식과 대응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정보공개운동이 크게 성장한 배경으로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꼽았다. 진상 규명과 위험 공개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정보를 직접 보고 확인하려는 의지가 두 대형 사건을 계기로 강해졌다는 것이다. 시민의식은 성장하는데 비해 공공영역, 특히 권력기관이 신뢰받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도 그 점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겠다.
시작은 '정보공개로 검찰을 바꾸자'
검찰 특활비 공개 판결을 계기로 특별한 권력기관인 검찰이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제자리를 찾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정보공개운동 초기 슬로건이 생각난다. "정보공개로 세상을 바꾸자." 검찰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정보공개로 검찰을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