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G7의 역사가 주는 교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집중하고 발휘하는 모임은 어디일까. 공식적인 기구라면 아마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집합을 들 수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국제무대의 강대국임을 인정받았다. 모든 결정을 비토할 수 있는 권리도 가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유엔 안보리는 이들 중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안보리의 결정 불능 상황은 더 심해졌다.
비공식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모임으로 G7을 들 수 있다. 소위 '시장 민주주의'라 불리는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으로 구성된 G7은 1970년대 경제와 화폐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및 금융을 넘어 정치 외교 안보 환경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협의하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유엔보다 한목소리를 내기 쉬운 강대국 집합이다.
G7의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교훈을 전해준다. 이 모임의 발단은 두 뿌리를 갖고 있다. 하나는 미국이 1973년 유럽 측 동맹국인 영국 독일 프랑스를 불러 백악관 도서관에 모여 세계경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비슷한 시기 화폐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미국 독일 일본 중앙은행이 조용히 회합을 가진 데 있다. 둘 다 당시 경제 및 통화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소수 강대국만의 비공식 협력이었다.
한국이 강대국 클럽 가입할 절호의 기회
두 뿌리를 하나로 엮어 5개의 강대국 정상이 공식적으로 처음 모인 것은 1975년 프랑스 랑부예 회담이다. 당시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은 주요국 정상을 초빙해 파리 근교 멋진 성에서 3일 동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혼란스러운 세계를 바로잡아 질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제안한 것이다. 상상력과 적극성으로 국력을 능가하는 외교력을 발휘하는 프랑스답게 말이다.
랑부예 회담의 백미는 이탈리아 알도 모로 총리의 외교 '도박'이다. 이탈리아는 원래 초대받지 못했으나 모로 총리는 이탈리아가 당시 유럽경제공동체의 순회 의장국이라는 점을 들어 참석을 밀어붙였다. 외교 사고가 나는 것을 막으려는 프랑스는 회의 개막 직전 이탈리아도 결국 초청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써 G5 모임은 G6 회의로 돌변했다.
유럽의 참여국이 많아지면서 이듬해 미국도 질세라 같은 북미의 캐나다를 참여시키자고 제안했다. 당시 캐나다 피에르 트뤼도 총리(현 저스틴 트뤼도 총리의 아버지)는 서방 리더 가운데 집권 8년째로 베테랑의 경험과 지혜를 더해줄 것으로 평가받았다. 1976년 G6가 G7으로 확대된 배경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G7은 러시아를 초빙해 G8이 되었다. 소련이 붕괴한 다음 러시아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향해 노력하던 1997년의 일이다. 이후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으로 점차 독재의 방향으로 나아갔으나 일단 회원이 된 나라를 쫓아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결국 러시아를 축출해 다시 G7이 되었다.
G7의 역사가 일깨워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세계차원의 목소리를 내는 강대국 클럽의 일원으로 지속해서 남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또 같은 지역의 기존 회원이 새 회원을 추천하고 책임지는 형식이다. 이탈리아가 '생떼'를 부리자 같은 유럽경제공동체의 프랑스와 독일이 도와주었고, 북미에서는 미국이 캐나다를 끌고 들어온 셈이기 때문이다. 유럽이건 북미건 지역 내 협력과 지원이 결정적이었다는 의미다.
외교적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한 2023년
올 5월에는 동아시아 일본이 의장국으로 G7 정상회담을 히로시마에서 개최한다. 일본은 아세안을 대표하는 인도네시아와 G20 의장국 인도를 초청하겠다는 소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위협, 북한의 무력시위로 서방과 독재세력의 지정학적 대립이 강화되는 추세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외교적 가치가 돋보이는 이런 시기는 G8으로 진입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한국은 경제 규모는 기존 G7 국가인 이탈리아나 캐나다와 비슷하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외교의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한 2023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