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한중관계의 걸림돌 중국의 대국주의
중국내 코로나 상황이 정점을 향하고 있다. 지금은 이로 인해 한중관계가 더 경색됐지만 코로나 상황이 다소 수그러들 무렵 교류의 복원이 예상된다. 긴 코로나 동면기 이후 재개될 한중관계의 발전을 기대하면서 한중간 해묵은 과제를 떠올리게 된다. 한중간 국력격차에 기인하는 중국의 대국주의 문제다.
국제정세에서 대국이 다소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공정과 공평의 가치가 훼손될 때는 국가 간 긴장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한중수교 이후 무역분규와 역사갈등 등을 대화로 해소해 온 오랜 관행이 중국 국력이 욱일승천한 2010년대 중반 이후 냉랭해지고 있다. 중국이 자국 입장을 우선하는 강압적 태도를 보이면서다.
중국은 과거 한국의 무역흑자를 국제분업의 자연스런 결과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에서 경제적 혜택을 보면서 안보는 미국편에 서는 '부당한 행위'로 간주한다.
대국인 중국에 대한 소국인 한국의 '올바른 자세'를 강조하면서 한국민의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2016년 무렵 중국 외교부 간부는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고 했고, 한중전문가회의에서는 "소국이 대국의 존엄을 해쳤다"는 발언도 있었다. 최근 개최된 한중학술회의에서는 "중국의 세계전략에 한국이 부응해야 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대중국 비호감도 세계 1위인 이유
대국주의의 역사적 사례로 19세기 말 서구문물을 앞서 수용한 일본의 '대국주의 소국주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아시아 맹주가 되는 대국주의의 길을 갈 것인지, 국가간 평화를 중시하는 소국주의의 길을 갈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대국주의를 선택하면서 무리한 대외확장을 추구하였고, 제2차세계대전 패망 후 소국주의의 가치인 평화의 정신이 평화헌법에 담기면서 논쟁이 마무리되었다.
대국주의의 대국을 유교도덕정치에 바탕한 '현명한' 왕도정치로 소국을 이끄는 개념으로 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우월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소국을 압박하는 부정적 의미로 본다. 중국도 국력이 취약했던 마오쩌둥 시기에 "국제사회의 대국주의를 소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이제 스스로 대국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질서에서 유엔헌장과 같은 규범이 필요한 것은 힘의 부당한 사용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소국은 보편적 가치인 공정과 평등을 강조하고 대국은 자국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국이 자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핵심이익을 우선하거나, 강압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할 때 대국과 소국의 관계는 악화된다.
소국은 규범 준수를 주장할 능력과 함께 수호할 의지도 보여야 대국의 존중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이 상당한 국력과 국격을 갖추었지만 지난 수년간 한중관계에서 불편함을 겪은 것도 지켜야 할 가치와 핵심이익에 대해 다소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지켜나가려는 전략적 단호함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중국은 대국주의가 자칫 패권주의로 비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국이 앞선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패권주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의 대중인권외교를 중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무시한 문화적 패권주의라고 반격한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을 반면교사로 삼아 한국의 입장에서 한중관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 지도자가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방이었다고 한 발언과 같이 구시대 중화질서 복원을 염두에 둔 역사적 패권주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퓨리서치 등 국제사회의 여론조사에서 한국민의 대중국 비호감도가 80%를 넘었고, 순위는 조사대상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중국이 대국의 위상을 무리하게 강조한 것에 대한 한국민의 반감이 반영된 것 같다.
대국과 약소국 경험한 중국의 지혜 필요
중국은 긴 역사 속에 '대국'의 위상을 누리기도 했지만 근대 100년 동안 '약소국'의 설움을 겪었다. 대국과 소국의 입장을 함께 수렴할 수 있는 역사적 감수성을 가진 '특별한 대국'인 중국이 한중관계를 성숙한 관계로 이끌 수 있는 역량과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지난 한중정상회담에서 양국정상은 1.5 트랙 대화채널의 재개와 함께 인적 문화적 교류의 증진 등 양국간 교류의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 바 있다. 올 한해가 한중 양국이 대국 소국의 소모적 논쟁을 뛰어넘어 소통과 협력의 이웃으로 거듭나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