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역동성 사라진 국민의힘 경선
현대민주정치는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대통령제와 내각제 국가의 정당의 역할과 운영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론적으로는 내각제 국가의 정당의 규율이 강하고 대통령제는 그렇지 않다. 내각제라는 권력구조 자체가 정당투표를 기본으로 하는 속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한국정당은 내각제 못지않은 중앙집중식 운영과 강한 규율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혼합형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한국의 권력구조와 운영형태는 원형 대통령제라 부를 수 있는 미국의 그것과 사뭇 큰 차이를 보인다. 그중 가장 큰 차이가 당 대표의 유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에는 당 대표라는 직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내대표가 정당의 대표로서 원내협상의 사령탑 역할을 하며 실질적인 당의 간판으로서 당을 대표한다.
우리나라는 한때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가 동일인이면서 공천권을 장악했다. 여당이 과반을 획득하면 대통령이 사실상 의회권력을 장악하는 완전한 '제왕적 대통령'이 됐다. 현재도 여야 모두 당 대표가 공천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여당의 공천권을 외형상 대표가 가지고 있어도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총재직을 대표로 바꾼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윤심에만 의존하는 당대표 정치공간 있나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다가오면서 이른바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향배가 당 대표 경선 초반부터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핵관' 권성동 의원의 불출마와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가 이어지며, 친윤그룹 후보는 사실상 단일화가 됐다. 당내 경선에 여러 정치공학이 작동되고 대통령실과 여당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몇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첫째, 여당이 대통령실의 종속변수로 기능하는 것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상대적 자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 이견과 비판이 상호토론과 절충을 통해 합의절차를 밟아가는 경로와 대통령실의 생각이 일방적으로 여당의 정책을 규정짓는 행태는 차원이 다르다. 힘의 균형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차기 공천을 의식해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의 눈치를 본다면 정당은 선거머신 기구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둘째,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룰이 당원투표 100%로 변경되고 결선투표를 도입한 것은 '윤심'을 관철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부자연스럽고 억지에 가까운 '정치적 배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셋째,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여당의 대표를 지명한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대통령의 생각이 경선에 결정적 규정력을 행사한다면 지명을 경선으로 바꾼 취지와 정당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집권여당의 대표는 당의 목소리를 소신껏 전달하고 반영하는 뚝심과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경선구도에서 과연 그러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 관계에서 상호토론과 존중, 건강한 비판이 사라진지 오래다. 내년 총선까지 여야 모두에게 협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과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맞물린 극한대립의 여야 관계에서 과도하게 윤심에만 의존하는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정치, 톨레랑스 결핍이 가장 큰 문제
국민의힘 대표 경선의 후보도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아직 시간도 제법 남아있어서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선 초반을 달궜던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과정에서 보듯이 최종 후보 등록 후에도 '윤심' 경쟁으로 간다면 내년 총선에 악재가 될 확률이 높다. 역동성이 배제된 경선은 감동을 줄 수 없다.
한국정치에서 16세기 유럽에서 정립된 '톨레랑스'가 결핍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의 의미인 이 말은 당내 세력들의 경쟁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톨레랑스는 시민의 일상은 물론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