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챗GPT 선풍과 한국 AI산업의 현주소
'숙제해주는 로봇'을 갖고 싶어하는 초등학생들의 바람은 실현될 것인가. 실제 중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의 베껴쓰기 방학숙제를 대신해 주는 '필기로봇'이 등장했다. 학생의 글씨체를 모방해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인데 원래는 작가들의 초고 완성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숙제로봇은 인공지능(AI) 기능이 없어 창의적인 과제를 수행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로봇이 등장하면서 인간 일자리가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로봇으로 인해 파생되는 일자리가 더 많았다. 자동차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영국정부는 '붉은깃발법'(Red Flag Act)을 만들어 자동차 운행을 원천봉쇄하고 마부들의 일자리를 보전하려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옛 영국의 자동차 자리에 현재의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서있는 듯하다. 지금 AI는 모든 산업분야에 스며들며 4차산업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준비하고 있고, 로봇은 AI와 결합돼 산업과 사회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실상은 이러한 세계적 움직임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그나마 '지능형 로봇법'이 개정돼 약간의 숨통은 틔였지만 아직 혁신적인 산업성장의 걸림돌인 점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AI 관련 산업은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아직은 구멍가게 수준이다. AI는 빅데이터라는 먹이가 있어야 성장할 수 있지만 한국은 데이터 활용 규제에 묶여 AI를 성장시킬 만한 빅데이터를 생성할 수 없다. 당연히 AI를 학습시킬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성장도 없다.
굴지의 AI 기업 조바심나게 만든 챗GPT
AI 관련 유니콘 기업 숫자만 봐도 미국은 50여개, 중국은 20개인 데 비해 우리는 하나도 없다. 규제로 인해 빅데이터가 없고 그로 인해 투자도 거의 없는 최악의 삼박자를 갖춘 셈이다. 반면 지금 미국은 인류의 AI혁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챗GPT'(ChatGPT)의 등장은 AI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챗GPT는 미국 오픈AI사가 개발한 인공지능으로 '대화'란 뜻의 Chat과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인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합성어다. 이 GPT는 질문이나 문장이 주어지면 해당되는 대답을 예측해 글을 써준다. 챗GPT가 나오자마자 미국의 대학과 각급 학교들은 학생의 창의성과 개인 성취를 저해할 우려로 사용을 금지시켰다.
구글의 '알파고'가 대중들에게 AI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챗GPT는 다양한 AI 상품을 준비하며 단계적 발전을 바랐던 AI 기업들의 기대를 한 순간에 꺾어버렸다. AI 기업들 상당수는 개발 방향을 바꿔야 할 상황이 되었다.
챗GPT는 마치 전문가처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서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논문이나 신문기사 작성은 물론, 변호사 모의시험에서 합격권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GPT는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인간두뇌'를 구현하는 원천기술이다. 미국정부는 이러한 GPT AI를 국가적 과제로 내세워 민관이 수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에 이미 10억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10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며 구글은 챗GPT와 유사한 '람다2'를 내놓을 계획이다. 중국도 정부차원에서 본격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베이징대가 개발한 '우다오'가 있고, 중국판 구글 '바이두'는 챗GPT와 비슷한 서비스 '어니'를 내놓을 예정이다.
GPT 개발 선도국에서 뒤처진 이유
한국도 GPT 개발에 선도적으로 뛰어든 국가로 꼽힌다. LG의 '엑사원',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카카오의 '코지피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업간의 경쟁적 분산투자와 정부의 규제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는 돈이고 힘이다. GPT는 한개 회사가 아닌 국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고 국가 경제는 물론 안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구글은 '단순한 검색'을 표방한 강력한 기능을 무기로 1998년 이래 지금까지 전세계 인터넷을 장악했다. 챗GPT는 인터넷 세상을 단숨에 바꿔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기에 천하의 구글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국의 GPT들이 다가오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는 규제우선 정책을 폐기하고 하루빨리 시장친화 정책으로 돌아서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