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불량자' 낙인 찍혀 공수여단 강제 입소
진실화해위, 삼청교육 피해사건 2차 진실규명 … 형제복지원 146명 피해자 추가 확인
전두환 정권 당시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꼽히는 삼청교육대에 학생들까지 대거 끌려가 피해를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차 조사를 통해서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도 2차 진실규명을 통해 146명의 피해자를 추가 확인하고 당시 정부가 형제복지원의 범죄행위를 인지하고도 묵인한 정황을 밝혀냈다.
◆삼청교육대 퇴소 후에도 국가 감시 = 삼청교육 피해사건은 1980년 8월 계엄포고 13호에 근거해 6만여명을 검거하고 이중 4만명을 삼청교육대로 보내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보호감호 등을 자행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혹독한 군사훈련과 구타, 가혹행위가 발생했고 교육 중 사망한 사람은 54명으로 확인됐다. 출소 뒤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도 367명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421명에 달한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6월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 사건을 '위법하고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총체적인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2차 조사에서도 삼청교육 피해사건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특히 2차 진실규명에서는 '학생 삼청교육대'의 존재와 인권침해 사례가 드러났다.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학생 삼청교육은 계엄사령부의 1980년 9월 19일 2단계 순화교육 입소 계획에 따라 '학생 불량자' 600여명에 대해 그해 9월 20일부터 10월 18일까지 제11 공수여단에서 실시됐다.
학생 피해자들은 수업 시간에 연행되기도 했는데 삼청교육대 입소에 따른 결석은 출석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로 생활기록부 등에는 관련 기록이 남지 않았다. 진실화해위는 삼청교육 피해 관련 '개인별 보상철' 문건을 통해 당시 교사 진술에 '삼청교육도 교육이다'라며 결석으로 처리하지 말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학생 피해자들은 퇴소 이후에도 관할경찰서와 동·면사무소에서 관리했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낙인효과를 경험하며 학업을 정상적으로 지속하지 못한 사실도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관할 동·면사무소 등에서 대외비로 관리하던 이수자 사후관리 자료를 입수해 처음 공개했다.
서울시 한 구청의 '1981년도 순화교육 이수자 사후관리 실적 보고서'를 보면 매월 셋째 금요일까지 사후관리 실태를 작성해 보고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관리 방침과 동별 관리카드를 대조하기 위한 세부 일정표, 이수자 동별 현황표도 포함됐다. 이는 순화교육을 이수하고 귀가한 사람에 대해서도 국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준다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피해자들은 순화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재심 조치와 함께 국회와 국방부에 '삼청교육피해자법'을 개정해 삼청교육과 관련된 모든 인권침해를 피해 범주로 포함하고 장기적인 조사기구 설치를 권고했다.
◆형제복지원 범죄 인지하고도 묵인 =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도 2차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형제복지원은 1960~1992년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 등을 대상으로 강제노역·가혹행위·성폭력 등 각종 인권침해가 자행된 곳이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8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국가에 의한 총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바 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1986년 보안사 수사공작, 1987년 안기부 주재 대책회의 등 주요 수사기관이 형제복지원 내 범죄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형제복지원을 비호한 사실을 밝혔었다.
이번 2차 조사에서는 이보다 앞선 1977년 중앙정보부가 형제복지원의 범죄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들어갔으나 2달 만에 '부산시의 필수적 기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내사를 종결한 사실을 확인했다. 내사 결과 문건에는 "부랑인을 수용, 선도함으로써 범죄의 사전 예방 및 건전한 부산시가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며 오히려 형제복지원을 두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안 모씨가 41년 만에 형제의 생존 사실을 알게 되는 등 잃어버린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상봉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또 다른 피해자 유 모씨는 강제수용되면서 헤어진 모친과 48년만에 상봉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동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된 대양호 등 23척 150명의 선원이 귀환 직후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와 같은 불법적인 수사를 받은 후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 받은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초 건설호·풍성호 납북귀환어부 사건을 조사하면서 납북귀환어부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던 사실을 파악하고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사건으로 결정한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중 첫 번째 진실규명한 사건이다.
조사결과 귀환한 선원들은 합동심문과 관할경찰서, 검찰의 수사를 받은 후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후에도 간첩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수년 또는 수십년간 사법기관으로부터 감시와 사찰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선원들 가족 역시 감시 대상이 됐고, 취업과 거주 이전에 제한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재심 등 화해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아울러 5.16 쿠데타 직후 발생한 '피학살자유족회' 탄압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이 사건은 5.16 쿠데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방첩부대가 전국피학살자유족회를 포함한 18개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 및 주요 간부 등을 영장없이 일제히 검거해 불법구금한 사건이다.
피학살자유족회는 6.25 당시 군·경 등에 의해 가족과 친족이 억울하게 희생된 경위를 밝히고 원혼을 달래기 위해 결성한 단체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군경경합동수사본부에서 집계한 자료를 통해 전국적으로 예비검속된 총인원은 3281명에 달했으며 그중 피학살자유족회 관련 피검자가 188명이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예비검속된 피검자들 중 심사분류를 통해 A~C급으로 분류된 651명은 혁명검찰에 송치됐고, 사안경미로 판정된 D급 2630명은 순차 석방됐다.
진실화해위에 신청된 사건 32건은 대부분 D급으로 분류돼 불기소나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진 사건이었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이들은 영장없이 연행돼 상당기간 불법구금 됐고 수사과정에서 일부는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석방 후에도 정보기관의 감시와 사찰대상이 돼 신체의 자유, 사생활 비밀과 행복추구권이 심하게 침해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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