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스라엘의 국가 경영

2023-02-10 12:00:48 게재
조 현 서울대 객원교수, 전 유엔대사

필자는 벨기에 수도 브뤼셀 근무 당시 박종철 사건 소식을 접했다. 상관인 공사에게 분노의 심정을 토로했다가 안보상황이 엄중하니 잠자코 있으라는 답을 들었다. 필자는 바로 이스라엘을 보라고 했다. 안보 상황이야 우리 못지않지만 쿠데타도 없고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느냐는 항변이었다.

그후 30여년 만인 2021년 말 이스라엘정부 초청으로 처음 방문했다. 당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세가지 호기심이 있었다. 놀라운 국방, 스타트업 기업 생태계, 그리고 민주주의. 특히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안보 상황에서 내각제는 괜찮은가.

레바논과 가자지구 국경을 둘러보았다. 미사일을 요격하는 아이언 돔, 고슴도치형 방어체계, 매우 잘 훈련된 군인들 모두 인상적이었다. 젊은이들은 군 복무기간 동안 커리어를 준비해 제대 후에 경력단절 없이 성장한다. 컴퓨터에 재능 있는 청년은 기술부서에 근무하고 군 대변인실에 근무하는 병사는 홍보 분야로 진출한다. 특수전 부대는 사회적 엘리트를 배출한다. 정치지도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이 이 부대에 들어가려고 체육 과외도 받는다고 했다.

이스라엘 국방에 핵무기 문제가 빠질 수 없다. 필자는 행여 어떤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군과 정부 인사들에게 연신 질문을 했다. 과연 핵보유가 국방에 얼마나 긴요한가? 미국과는 어떻게 협력을 하는가? 초기 핵개발 시 제재는 어떻게 회피했는가? 모두 한결같이 "무슨 핵?"하면서 시치미를 뗐다.

경제, 사회주의 요소의 최첨단 자본주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국의 경제성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과 비교하면서 자신들의 성취를 은근히 자랑도 하지만 제조업은 한국만 못하다고 아쉬워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스타트업이다. 아이디어로 작은 기업을 일궈 나스닥에 상장하고 세계의 큰 기업에 즐거이 인수합병 당한다. 이러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혁신의 정신이 이루어 낸 것이다.

농업도 혁신적이다. 당을 줄이는 설탕 생산, 메뚜기 대량 양육을 통한 고농축 프로틴 식품 생산 등 전통적 농업을 넘어서는 성공사례가 많다. 고교생들도 동아리를 만들어 혁신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창업지원 NGO들은 이들을 기업인과 매칭시켜준다.

이스라엘 경제는 유럽식 사회주의 영향을 받았다. 유럽 출신의 지식인들이 건국의 뼈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치가 유대인을 박해하면서 사회주의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을 정도로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다. 이들이 만든 이스라엘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다. 교육비는 저렴하며 사회 보장제도 또한 발달되어 있다. 반면 경제를 이끌어 가는 동력은 무한경쟁에서 나온다. 최첨단 자본주의다. 이스라엘 기업들은 창업할 때부터 국내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혁신으로 글로벌 기업을 꿈꾼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력은 자본주의적 사고, 실패에 대한 관용, 그리고 공정한 규율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척박한 네게브사막에 잘 가꾸어진 파인애플 나무들만큼이나 상징적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각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이스라엘에 머무는 동안 총리 대통령 외교장관을 각각 만났다. 베넷 총리는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막 돌아왔다면서 몇몇 외국정상과 인터넷 매신저인 왓츠앱 단체방을 만들어 코로나 정책을 공유한다고 소개했다. 이스라엘도 정쟁은 심하지만 안보문제가 대두되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일치단결한다. 적이 뚜렷하니 적전분열이 있을 수 없다.

국민이 정부 비판에 눈감으면 민주주의 후퇴

베넷 총리는 이스라엘과 한국이 유사한 안보상황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적은 그냥 적일 뿐이지만 한국의 적은 적인 동시에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문제가 복잡하다고 대답했다. 북한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일치되기 어려우며 오히려 내부 분열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반면 이스라엘의 적은 오로지 아랍이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역설적으로 내각제도 그래서 가능한 것 같다.

작년 말 네타냐후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다시 들어섰으며 여기에 극우정당도 포함되었다. 이 정부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 것인지 아직 예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에도 완벽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리 훌륭한 민주주의 전통이 있어도 국민이 정부에 대한 비판의 눈을 감으면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뒷걸음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