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모든 물질은 양자물질이다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은 세상이 멸망하고 모든 지식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딱 한 문장만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하겠냐는 질문에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하겠다"고 답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원자와 그 구성입자들이 있는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이라는 법칙이 지배한다. 최근 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 그리고 양자물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양자컴퓨터 기술을 위해 글로벌 대기업들이 엄청난 자원을 쏟아붇고 있으며 잊을 만하면 뭔가 중요한 일을 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가끔 신기한 성질을 보이는 양자물질을 발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 등의 양자기술에 대해 일반인이 느끼는 장벽은 매우 높다. 현대 첨단기술이 대부분 그렇다고는 하지만 양자기술은 차원이 다르다. 파인만이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도 한 것을 보면 물리학자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양자역학이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수단이 축적된 경험과 뇌의 상상력,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혀 경험해본 적 없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 앞에서 언어는 길을 잃게 돼 있다. 경험적 지식체계에 새로운 것이 끼워 맞춰지는 순간에 이해했다고 느끼는 인간의 뇌는 양자역학 앞에서 커다란 혼란에 빠지고 만다.
가시적 현상들도 실제는 양자의 세계
그러나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양자역학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거의 완성된 학문이다. 양자역학의 관점과 도구로 물질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마치 미적분으로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당연하다. 그래서 양자역학 자체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극소수다. 양자역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한 계산 결과가 실험과 잘 맞기 때문에 이 도구를 더 연구해 발전시킬 여지가 많지 않은 것이다. 양자역학이라는 도구는 천재 파인만이든 평범한 물리학자든 이를 얼마나 이해하는지와 무관하게 잘 작동한다.
양자역학이 완성된 학문이고 모든 물리학자들이 물질세계의 특성을 탐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과는 별개로 양자역학에는 '해석' 문제가 있었다. 양자역학이라는 틀을 통해 보는 세상은 인간이 보기에 참으로 기묘하므로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는 물질세계를 설명하는 기본적인 도구로서의 양자역학 위치와는 별개의 문제로 여겨졌고, 어쩌면 철학적 인식론 문제인 것 같았다. 왜냐면 물질의 성질을 알아내기 위한 양자역학 계산의 결과는 여러 해석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와는 무관하게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고, 물리이론에 대해 실험적 검증을 넘어서는 의미 추구는 철학의 영역일 수도 있어서다.
철학 문제처럼 보이는 이 문제가 실은 물리학 문제임을 증명한 사람이 존 스튜어트 벨이다. 벨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실험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정립했다. 1980년대에 실제로 실험을 했더니 여러 해석 중 '코펜하겐 해석'이 옳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업적에 2022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됐다. 불행히도 벨은 사망한 후라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오랫동안 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던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도 이렇게 종지부를 찍는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이 결국 틀렸다.
양자역학적 현상은 미세한 원자 수준에서는 잘 나타나고 일상적 감각의 거시세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두의 파인만 말을 뒤집어보면 기묘한 미시입자들이 뭉쳐 원자를 이루고, 원자들이 모여서 분자와 고체를 만들어 거시물질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금속은 전기를 잘 통하고 나무는 안 통한다' '거울은 빛을 반사하고 유리는 투과한다'처럼 일상 언어로 표현해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이 실은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고 양자역학이 아니면 수학적 추론조차 할 수 없는 미시입자의 기묘한 성질들이 모여서 나온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결국 양자물질인 것이다.
양자물질로 이뤄진 세계 이해할 수 있나
파인만도 이해 못한다는 양자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파인만과 쌍벽을 이루는 구 소련의 천재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는 "인간의 위대함은 그 상상력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도 이해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천재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우리같은 범인은 그저 천천히 살피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