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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듀이도 놀란 시카고대의 용단

2023-02-17 11:05:31 게재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

1997년 가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대 캠퍼스는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우울한 곳이 있었다. 교육학과였다. 대학측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원 박사과정 지망생이 한명도 없다"며 학과 폐지를 결정했다. 당시 뉴욕타임스(1997년 9월17일자)는 '시카고대의 교육학과 폐지 논란(End of Chicago's Education School Stirs Debate)'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시카고대가 결단을 내렸다. 세계적인 석학 존 듀이(1859~1952)가 1885년 설립한 교육학과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존 듀이는 달달 외는 암기식 교육을 없애기 위해 시카고대에 랩 스쿨(Lab School)을 설치한 인물이다. 시카고대가 그런 전통의 교육학과를 폐지키로 한 것은 교육과 연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때문이다. 교육학과가 교사 연수와 실제 학교생활과의 모든 유대를 끊고 이론에만 몰두해 스스로 곤경에 처했다. 존 듀이가 실험학교를 설립하면서 응용과 실용 연구를 한 교육학과의 운명은 잔인한 역설이다."

1970년대까지 시카고대는 교육에 대한 헌신이 강했다. 학과 외에도 교사 양성에 전념하는 교육대학원이 있었고, 교사지도와 연구과제를 겸한 랩 스쿨과의 연계가 두터웠다. 존 듀이의 후광은 강력했다. 포드재단이 지원하는 전임교수가 40명이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교육에 대한 집중이 약해졌고 연구비는 고갈됐다. 그러자 대학측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 교수진은 15명으로 쪼그라들었는데 12명은 60세가 넘었다. 랩 스쿨과의 연계도 단절됐다. 그 여파가 결국 학과 폐지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시 지원 0명 26곳, 운명의 시간이 왔다

시카고대의 교육학과 폐지 논란은 강렬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통의 전공이라도 아이덴티티(identity)가 사라지고, 현장과 동떨어진 연구와 타 학문과의 연계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 존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시그널이다.

우리 대학은 어떤가. 이런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나. 교수의 반발, 동문의 반대, 교직원의 신분보장 압력에 엄두를 못 낸다. 이번 2023학년도 대입은 대학가에 결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정시모집에서 지원자가 '0명'인 학과가 전국 14개 대학 26개다.(종로학원 분석) 지원자 '제로 학과'는 해마다 늘어난다. 2020학년도 3개, 2021학년도 5개, 2022학년도 23개로 증가하더니 이번에는 최근 4년간 최대치를 찍었다. 모두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왔다.

전공을 살펴보니 인공지능학과 신재생에너지학부 사이버보안학과 항공드론학과 군사학과 항공서비스학과 군사학과 등 나름 인기가 있는 분야다. 그런데도 수험생들은 왜 등을 돌렸을까. 해당 대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전공명은 그럴듯한데 교수진이나 시설이나 학교 경쟁력이 미덥지 않아 외면한 것이다. 이들 학과는 극단적 상황에 몰려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 대학이 결단해야 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교육부는 뒤늦게 바빠졌다. 2024년부터 전체 입학정원 내에서 대학이 자유롭게 학과를 신설·통합·폐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만시지탄이다. 학과 통폐합 건수는 2019년 130건에서 2021년 328건으로 늘어났다. 인문사회계열이 284건, 공학계열 190건, 자연과학계열 130건 등이다.(교육부 자료) 선택은 대학 몫이다.

대학 입학가능 자원 부족 사태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올해 전국 초등학교의 1학년 입학생이 37만9373명에 불과하다. 이보다 강렬한 시그널이 또 있을까.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몸집을 줄이고 거품을 빼고 전공 재구조화로 승부해야 한다. 그럴 용단이 없다면 문을 닫는 게 학생에 대한 도리다.

존 듀이의 교육학과 폐지 교훈 되새겨야

하지만 시카고대의 교훈을 절절하게 느끼는 대학은 없어 보인다. 133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카고대는 노벨상 수상자만 100명 가까이 배출했고, 세계 대학평가 랭킹이 10위권에 드는 명문 사학이다. 그런 시카고대보다 나은 대학이 대한민국에는 한곳도 없는데 뭐가 그리 도도한가. 대학마다 너절하게 전공을 진열해놓고 교수진도 허약하니 유망 전공이라는 신재생에너지나 인공지능학과조차 외면받는 게 아닌가.

정시 모집 '0명' 사태는 대학이 그동안 학생을 돈으로만 여겼을 뿐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좌다. 대학은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시간이 없다존 듀이의 시카고대 교훈을 되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