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아세안관계 협력 새로운 지평은 시민사회

2023-02-22 12:48:06 게재

민주주의 보루, 아세안 시민사회 성장 주목해야 … 지속가능개발 등 지역이슈로 동남아 시민사회와 소통 필요

정해문 전 태국 대사

시민사회가 자유롭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 이거나 또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시민사회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빈껍데기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으며 시장은 정글이 된다.

벤자민 브레들로우(Benjamin H. Bradlow) 프린스턴대학 교수와 모하메드 알리 카디바르(Mohammad Ali Kadivar) 보스톤 대학 교수는 최근 포린어페어지 공동 기고를 통해 브라질의 민주주의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 집권 하에서 살아남고, 지난달 초 수천 명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대통령궁 및 대법원으로 난입한 반란 사태를 제압할 수 있었던 저력을 분석하고 있다.

두 교수는 브라질의 민주주의가 지금껏 인내하며 버틸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브라질의 제도가 아니라 역동적 시민사회 덕분이라고 진단한다.

◆한-아세안 시민사회 협력의 현주소 = 아세안시민사회회의는 아세안 회원국 시민사회기구들의 연례 포럼이며, 아세안정상회의와 병행 개최된다. 아세안 의장국 시민사회가 조직의 주체가 된다. 가장 최근의 회의는 2022.11.3.-5 캄보디아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 계기 프놈펜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에서는 (1)군국주의와 권위주의로 부터 시민의 공간 방어, (2)경제 정의, 기후 정의 및 식량 주권을 위한 신자유주의와의 싸움, (3)품격 있는 생활 : Covid-19 이후 회복기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적 보호, 양질의 일자리 및 의료서비스, (4)평화와 인간 안보, (5)동남아 민중들의 대안적 지역주의 등 다섯 개 주제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 주제를 놓고 보면, 앞으로 한국과 아세안 시민사회는 공감 영역을 확대해 나가면서 활발한 협력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아세안의 관계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며 최상의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다차원적, 다면적, 다층적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시민사회 협력은 한-아세안 협력의 빠진 고리(missing link)로 남아 있다. 시민사회 협력이 공식화 되면 한-아세안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공공외교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줄 것이며 우리의 인도-태평양전략과 한-아세안연대구상에도 힘을 실어줄 것이다.

지구촌 복합 위기의 시대에 한국과 아세안의 상호 의존은 갈수록 깊어지고 동시에 넓어지고 있다. 양측 간 시민사회 협력이 이런 움직임에 가속 페달을 밟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북대학교 동남아 연구소는 2021년 6월 "한국 시민사회의 동남아시아 연대운동" 제하의 정책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노동과 보건.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연대 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조사하고 사례를 연구한 것으로 앞으로 이 분야 연구와 협력을 촉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보고서는 이러한 성과에 추가하여 (1)노동, 다국적 기업 감시 (2)민주주의, 인권 (3)난민, 평화 (4)환경, 공정 무역 (5)국제개발협력 (6)이주민 지원 등 6개 분야로 대별하여 한국의 동남아 연대 운동 시민사회단체 디렉토리를 편찬,수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람 중심'의 시각에 입각하여 동남아 출신 국내 이주민들과 연대하는 단체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1990년대 이후부터 동남아에 대한 지원을 연대의 목표로 설정하고 연대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아세안 청소년 발전 인식(YDI)에 관한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아세안을 보는 방식 이해 - 인식, 가치 및 정체성'을 주제로 아세안 각국 관계자들이 지난 2021년 8월 30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아세안 홈페이지


◆역사NGO포럼, 한-메콩연대 이어가 = 앞으로 한국 시민사회와 동남아 개별 국가 시민사회 및 아세안 시민사회가 점차 공식적, 체계적 교류.협력의 길을 열어 나가는데 이러한 연대운동은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구현, 미얀마 민주화, 동티모르 선거 감시, 평화, 환경과 개발, 이주 노동자 권익 보호, 결혼 이주자 정착 지원 등 개별 이슈 별로 동남아 유관 시민사회단체들과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진심어린 연대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양측은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면서 금후 본격적인 제도적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해 오고 있다. 한국과 동남아가 함께 만들어 내는 '번영과 평화'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을 중시하는 관계는 정부와 기업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된 관심사이자 활동 영역이기도 하다.

한국의 시민사회인 '역사NGO포럼'은 지난 몇 년간 한-메콩목요포럼, 한-메콩민간협력포럼, 메콩청년학교온라인연수, 한-메콩시민사회네트워크 사업 등을 통해 메콩 지역 시민사회, 학계, 연구자, 정부 간 기구와 소통과 연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노동.보건 문제를 넘어 SDGs 달성, 민주주의.인권, 기후.환경, 청년과 개발, 분쟁.화해 등의 공동 관심사를 다루며 상생 번영의 한-메콩 미래공동체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 역사NGO포럼은 2022년 활동을 결산하면서 한국과 메콩 5개국 정부에 보내는 '한-메콩 시민사회 호소문'과 10대 정책 제언을 메콩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채택하였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한-메콩시민사회포럼' 개최 필요성을 역설한 점이다, 앞으로 양측 시민사회는 이 호소와 결의를 차근차근 발전시켜 한-메콩시민사회포럼 나아가 한-아세안시민사회포럼(회의)공식 출범을 위한 주춧돌을 놓아야 할 것이다.

우선 한국 시민사회의 동남아시아 연대운동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협력 분야를 아세안 시민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고 동시에 우리 시민사회가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점차 확대해 나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아울러 옥스팜(Oxfam) 등 선진국 NGO들이 동남아 현장에서 시행하는 협력 사업의 면면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선진형 사업과 주제 발굴에도 눈을 돌려야 시대의 흐름에 더 부합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동남아 진출 역사가 길고 현지 기반이 탄탄하며 국제적 평판을 두루 갖춘 다른 나라 시민사회단체 공동으로 3자 또는 4자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아세안시민사회 협의체 출범 기대 = 다른 한편, 아세안을 떠받치는 대륙 동남아와 해양 동남아에 각각 특화된 아세안 소지역과 시민사회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높은 생산성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례로 앞서 서술한 바 있는 '한-메콩시민사회포럼'같은 포럼을 공식적으로 조직하는 방안을 상정해볼 수 있겠다.

궁극적으로는 가칭 "한-아세안시민사회회의(Korea-ASEAN Civil Society Conference)"와 같은 협의체 출범을 통한 양측 협력을 공식화 하는 것이다.

매년 아세안 의장국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병행하여 양측 시민사회회의를 개최하면 그 자체 참신한 아이디어로서 동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더하여 주요 아세안 회원국과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 간 양자 협의회를 공식 출범시키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하다 하겠다.

필자는 작년 9월 한-메콩시민사회 네트워크 구축 지원 차 라오스 출장 계기에 옥스팜 라오스 사무소를 방문하여 면담한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시민사회 간의 협력이 거창한 아이디어 교환의 담론단계를 넘어 현지 주민들의 실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본격적 프로젝트 논의.수행 단계로 들어갈 때 사업 목표를 정교하게 설정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 대단히 중요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여성과 청(소)년들의 역량 증진에 초점을 맞춘 사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동시에 사업의 중복을 방지하기위해 어떤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지, 사업의 실질적 수혜자가 누구이어야 하는지, 사업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