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도-태평양시대 높아져 가는 아세안의 위상

2023-03-03 10:36:40 게재

세계 11개국 독자적 인·태 전략 발표, 적극 활용 … 아세안 의장국된 인도네시아 역할 주목해야

바야흐로 인도-태평양 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주요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 미국 일본 인도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체코 등 최소 11개국이 독자적 인태 전략을 발표했으며 모두 그 중심에 아세안을 두고 있다. 각국의 인태 전략에서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이 그 만큼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길목을 차지하는 만큼 각국은 자신의 인태 전략에서 동남아에 지정학적 핵심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각국이 인태 전략을 본격 실행하는 해인만큼 동남아시아의 위상은 갈수록 상승 가도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아세안을 인도태평양지역에서 평화와 공동 번영을 구축하는데 핵심 파트너로 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해 11월 프놈펜 개최 한-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체제 내에서 아세안에 특화된 맞춤형 지역 정책으로서 한-아세안 연대 구상을 발표했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

◆다자정상회의 성공개최한 아세안 3국 = 아세안은 올해 인도네시아의 의장국 수임을 계기로 더 자신감을 갖고 강대국 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프놈펜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지도자들은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을 주류 정책에 편입시키는 가이드라인을 채택한 바 있다. 어떠한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도 성공하려면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과 연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아세안은 AOIP를 서로 경쟁하는 전략의 방향을 읽고 관리할 가이드라인 겸 도구로 활용할 의도를 갖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전략들이 끝내 서로 헝클어지거나 겹치게 되지 않도록 하려는 구상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AOIP는 아세안이 착수한 프로그램이나 활동이 서로 배척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작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G20 정상회의, 태국 방콕에서는 APEC 정상회의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전 세계에 아세안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아세안 3개 회원국에서 미·중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지구촌의 평화, 안정 및 번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다자 정상회의가 차례로 개최되어 아세안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지역협력기구로서의 위상을 한층 고양시킬 수 있었다. 동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치열한 미.중 전략 경쟁 구도 속에서도 회의 결과물을 도출해낸 협상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하겠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아세안 3개 회원국 주최 정상회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려운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및 태국은 주요국들을 가까스로 성공적으로 관여시킬 수 있었다. 캄보디아는 어떻게 소국이 위기 시 초강대국들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었다. 작년 G20 의장국 인도네시아는 모든 회원국을 설득해 '2022 발리 리더스 선언(Bali Leaders Declaration)'에 동의하도록 유도했다.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로 간주되었으나, 그 결과 자카르타의 국제적 평판은 널리 회자되었다. 자카르타에서 형성된 호의적 분위기가 APEC 2022 주최국인 태국이 우크라이나 위기와 기타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성취한 컨센서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했다. 방콕 APEC 정상회의에서 21개 경제 참가자들은 2022 발리 리더스 선언을 포함, 모든 핵심 문서에 동의하고 지속가능 경제 성장과 녹색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서약했다.

지난 2022년 11월 11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제40차 아세안 정상회의 개막식에서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필리핀 대통령 페르디난트 로무알데즈 마르코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프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 베트남의 팜민친 총리,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브루나이의 술탄 하지 하사날 볼키아, 판캄 위파반 라오스 총리, 아자르 아지잔 하룬 말레이시아 하원의장. 미얀마는 쿠데타 관련 논란으로 초대받지 못해 9개국 정상만 참석했다. 신화=연합뉴스


◆세계 성장의 중심 노리는 아세안 = 올해 인도네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인도네시아는 불확실한 지정학적 여건 하에서도 작년 발리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역사의 칭송을 받을 유산을 남기기 위해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 아세안의 목표를 집약한 주제 '아세안은 중요하다 : 성장의 중심'(ASEAN Matters : Epicentrum of Growth)이 시선을 끈다. 역외국들도 올해 인도네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이번 아세안 의장국 수임을 계기로 동남아와 인태 지역의 안정과 번영은 물론 지구촌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성장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아세안 외교장관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첫째는 아세안이 어느 누구의 대리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아세안 중심성과 단합을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는 점, 둘째는 아세안이 계속해서 세계 경제성장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이는 정치적 안정과 지역 평화가 유지될 때에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2월 3일 아세안 외교장관들과의 업무 오찬에서 미얀마 사태 관련 이미 아세안 회원국들 간에 합의한 5개항 합의 사항(Five Point Consensus) 이행 방안을 중심으로 해결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장관들은 모두 5개항 합의 사항을 기반으로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단합된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레트노 외교장관은 같은 날 제32차 아세안 조정회의에 참석, 동티모르가 최초로 아세안 회의에 참석한 것을 역사적이라고 환영하고 인도네시아 의장국 수임 기간 중 우선순위와 성과물을 3개의 기둥(pillar)에 비유하면서 설명했다. "아세안의 중요성에 관한 첫째 기둥"- 인권 대화 제도화,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아세안의 협력 증진, "성장의 중심에 관한 둘째 기둥"- 아세안 보건 체계 강화, 튼튼한 공급망 확보 포함 식량 안보 강화, 미래의 대외 충격에 대한 경제의 복원력을 보장하는 금융 안정 강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 이행에 관한 셋째 기둥"- 4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관련 디지털 개발 청년 대화, 8월 창조경제 포럼, 9월 아세안 정상회의와 병행 개최될 인프라 스트럭쳐 포럼 및 아세안 비즈니스 및 투자 정상회의 등이 인도네시아가 취할 이니셔티브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 인구 2.7억명으로 세계 4위 = 인도네시아는 인구 및 경제면에서 아세안의 약 40%를 차지하며 사실상 아세안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인구 2억7400만으로 전 세계 4위,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민주주의 국가, 가장 인구가 많은 무슬림 다수 국가(사우디보다 7배나 많은 무슬림 국가)이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세계 니켈 생산 1위, 코발트 생산 2위 국가이며 이 두 금속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광물이다.

인도네시아는 또한 전 세계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해로(海路)인 말라카해협을 석권하고 있다. 이 해협이 바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한다. 대부분의 중국 에너지 공급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인도네시아가 미중 경쟁의 버팀대가 되었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맥스 부트(Max Boot)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는 지난 2월 22일자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기울여라. 인도네시아가 아시아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왜 인도네시아가 미중 모두에 중요한 나라인지 분석하고 있다. 부트는 칼럼 결론 부분에 미 국방부 고위 관리가 "인도네시아는 정말 중요한 나라이다. 특히, 올해는 아세안 의장국 수임으로 미국인들이 동남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심 국가인 나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할 해이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인도네시아는 미국 정책입안자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으로 부터도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의 미래를 결정짓는데 큰 발언권을 가질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필자는 이러한 전망에 공감한다.

'한-아세안 연대구상'과 '한-아세안 포괄적·전략적 파트너십' 성과를 보통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을 때 한-아세안 협력은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OECD는 2023년 아세안의 경제 성장률을 5.2% 정도로 전망한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지역을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발전시키려는 비전을 세계와 공유하고 있다. 작년 우리의 최대 무역 흑자국은 바로 아세안 국가인 베트남이다. 양측 협력의 진폭이 끝없이 넓어질 수 있음을 가늠하게 해준다. 양측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한-아세안 외교를 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