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돈 덜 쓰기 위한 농정이 농촌 살린다
흔히 시골에 살면 돈이 덜 들 것이라 착각한다. 이것은 귀촌 귀농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2021년 도시가구의 월 소비지출 305만원에 비해 농촌가구의 월 소비지출은 229만원으로 약 75% 수준이니 적은 것 같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가구주가 40대인 경우 농촌은 382만원, 도시는 372만원으로 농촌의 소비지출이 더 많다.
농촌의 평균 소비지출액은 구성 비율이 높은 고령의 농가가 그 평균을 끌어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농촌에서 약 40%를 차지하는 70대 농가의 소비지출은 184만원으로 도시 평균의 60%밖에 되지 않는다.
시골에 살면 지출이 적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통계자료 평균의 함정 탓이다. 또 다른 가능성의 하나는 아직도 예전의 농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50년 전인 1970년 농가의 월 가계지출은 1만7314원으로 도시 2만7820원의 약 60% 수준이었다.
도시와 비슷한 생활구조가 씀씀이 키워
그럼 농촌에서 씀씀이는 왜 많아졌을까. 우선, 활동하는 공간이 넓어졌다. 정보공유와 이동이 쉬워지면서 다양하고 나은 품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찾을 수 있고 구하기 쉬워지자 활동반경은 점점 넓어졌다. 더 많은 것을 구매하기 위해 지출하고 더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더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두번째 이유는 농촌 생활에 필요한 것을 돈으로 사게 되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의 식량은 자급했고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단작과 규모화, 전문화로 특징되는 농업의 산업화는 농민이 돈을 더 벌 수 있게 했으나 필요한 식량을 사먹게 했다.
예전에는 식량뿐 아니라 옷도 만들어 입었고 이웃 주민들과 함께 집도 지었다. 식량저장을 위해 마련했던 작은 토굴 대신 냉장고를 샀고 이웃과 즐기던 다양한 놀이 대신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사고 있다.
세번째 요인은 에너지 소비의 변화다. 예전에는 석유로 난방을 하지도 않았고 LPG로 밥을 짓지 않았으며 가전제품도 없었다. 또한 자동차 등 석유로 가동하는 장비를 개인적으로 쓰지 않았다. 30년 전 연탄 석유류가 주종이던 에너지원은 석유류 전력 도시가스로 바뀌었다. 문제는 주종이 되는 에너지원의 가격이다.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가정용 등유는 1.9배, 프로판가스 1.4배, 전기는 1.2배, 도시가스는 1.1배 올랐다.
여기에 도시와 비교해 여러 기반시설이 부족한 것도 영향을 미친다. 인구가 밀집된 큰 읍내가 아니면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한겨울에는 보일러를 틀어야 한다. 서울에서는 65세 이상이면 지하철이 무료이지만 농촌에는 이러한 혜택도 거의 없다. 청년들은 인근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자동차를 사지 않으면 출퇴근을 할 수 없다.
농사 짓는데 들어가는 농업경영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1992년부터 2021년까지 30년간 농가 경제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농업총수입은 3.5배 늘어난 반면, 농업경영비는 7.1배 늘었다. 이에 따라 농업소득은 1.8배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농업소득은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2년 농사를 짓기 위해 쓰는 돈은 농업소득의 45% 정도였으나 2021년에는 2배 가까이 늘었다. 농사로 많이 벌지만, 농사짓기 위해 더 많이 쓰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 농업·농촌 지원정책을 프로그램 농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농정당국이 부서별로 만든 많은 지원정책을 농민이 선택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마치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처럼 공급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이 다양한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는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이다.
돈 버는 데 편향된 정책에서 벗어나야
지금 농촌의 현황과 지난 30년간의 통계자료는 농가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농촌경제가 나아질 수 없고 농업경영비를 낮추지 않는 한 농업소득을 높이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농업·농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누구나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취약계층에게 더 큰 효과를 내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금의 편향된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 농촌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