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엔진의 정치 - 독일이 돌변한 이유

2023-03-13 12:05:08 게재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

유럽연합(EU)은 2035년부터 내연엔진 자동차 판매를 완전히 금지하겠다는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지난해 10월 결정했다. 20세기 인류와 지구의 모습을 뒤바꾸어 놓은 내연엔진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주도 세력이었던 유럽이 스스로 살을 깎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결정이었기에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 여론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7일 내연엔진 금지 조치의 추진이 불확실해졌다. 이미 합의한 정책에 대해 유럽의 중심 회원국인 독일이 입장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내연엔진을 완전히 금지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새로운 논리를 내세우는 중이다.

기술적으로 독일의 새 주장이 일리는 있다. 친환경 연료를 생산해 엔진에 공급한다면 지구도 살리고 기존의 산업도 유지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풍력과 같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해 일단 물을 산소와 수소로 나눈 뒤, 공기에서 추출한 이산화탄소와 섞어 메탄올을 만들어 사용하면 거의 탄소중립적인 환경자동차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고급 자동차의 대표 주자 포르쉐의 전략이다. 포르쉐는 독일의 지멘스와 미국의 엑손모빌 등 기계·석유 분야의 세계적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형성해 일명 '환경연료(e-fuels)'의 실용화에 착수했다. 불확실한 자동차의 미래를 놓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치열한 계산과 전쟁이 시작한 셈이다.

자민당 생존전략에서 나온 내연엔진 지속론

작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전기차로 완전히 방향을 선택한 듯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자회사 포르쉐의 사장이 모회사 폭스바겐의 회장으로 옮겨오면서 '환경연료' 방안이 급격히 부상했다.

퉁퉁거리는 모터소리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의 상징이듯, 포르쉐란 내연엔진의 독특한 소리로 거리의 시선을 끄는 고급차다. 자동차광에게 전기로 조용히 움직이는 포르쉐는 명품 옷을 입고 외출하지 말라는 말과 비슷하다.

자동차업계의 새로운 전략은 독일 국내 정치판에서 열세에 놓인 자유민주당(FDP)의 생존을 위한 차별화 전략과 만났다. 독일의 연합정부에서 교통부장관을 담당하는 자민당의 폴커 비싱은 다양한 논리를 동원해 내연엔진의 지속성을 주장하는 대표 목소리로 부상했다.

우선 유럽이 서둘러 내연엔진을 금지해 전기차로 전환해버린다면 경쟁 세력인 미국과 동아시아에 좋은 일만 시킨다는 주장이다. 왜냐면 지구촌 많은 나라는 2035년 이후에도 여전히 커다란 내연엔진 자동차시장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내 시장을 잃은 유럽 자동차산업은 기술 경쟁력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생산가가 비싼 전기차로 완전한 전환은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고 한다. 부자들은 환경 운운하며 전기차를 사 대겠지만 중산층이나 서민은 이미 생산된 중고차나 타는 계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2010년대 전기차의 등장과 함께 새차 가격은 급격하게 상승했고, 따라서 신차 구매연령은 높아지고 중고 자동차를 사용하는 기간은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유럽연합이 나서 유럽 전체에 내연엔진을 금지하는 행위는 기술적 다양성을 가로막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유럽에서 다양한 기술적 접근이 가능하게 내버려 두고 시장이 정하게 만드는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환경연료 엔진 자동차는 억지에 가까워

유럽연합의 국제 경쟁력이나 사회적 배려, 기술적 다양성은 모두 중요한 지적이다. 폭스바겐이나 푸조 피아트 등 유럽 유수의 자동차산업 입장에서 100년 넘게 쌓아온 기술의 금자탑을 포기하는 일은 아까울 터다. 하지만 친환경 메탄올 자동차의 논리는 아직 억지에 가깝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환경연료를 생산해 차를 굴리면 배터리 전기차에 비해 5~6배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합의를 깨는 독일의 태도는 책임 있는 세력의 모습은 아니다. 유럽을 넘어 지구촌 한 시민 입장에서는 유럽이 내연엔진을 포기하고 친환경 전기차의 길로 나서는 선도적 모험을 계속하기 바란다. 어차피 내연엔진은 다른 지역에서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