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라이즈(RISE)'는 떠오를 수 있을까
#1.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통일 독일에선 특이한 일이 발생했다. 동독지역 인구는 201만명(13%) 감소한 반면, 서독지역 인구는 497만명(8%) 증가했다. 동독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했다. 전통문화의 중심지인 드레스덴은 실업자가 7만명 넘게 쏟아졌고 빈집이 20%나 급증했다. 독일정부와 지자체는 대학과 첨단산업을 묶어 드레스덴 부활을 시도했다. 드레스덴공대 등 10여개 대학과 기초과학연구소, 폭스바겐을 비롯한 대기업 등 3주체가 '산학연' 모델을 창출했다. 일자리는 4만2000개가 생겼고 인구는 47만명까지 줄었다가 54만명으로 증가했다. '엘베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드레스덴 스토리다.
#2. 1980년대 스웨덴은 조선업이 쇠락했다. 남서부 지역의 해안도시 말뫼시의 상징이던 '코쿰스 조선소'가 1987년 폐쇄됐다. 실업률은 22%까지 치솟았고, 해고노동자는 2만8000명에 이르렀다. 지역이 초토화됐다. 말뫼시는 정보기술·바이오·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육성계획을 세웠다. 1998년에는 말뫼대학교를 세워 스타트업의 우수인재 공급 창구로 키웠다. 지자체와 기업은 매칭 펀드로 친환경 주거·기업 단지를 조성했다. 말뫼는 꿈틀거렸다. 도시 평균연령이 36세로 유럽의 대표적인 젊은 도시이자 스타트업 도시로 바뀌었다. 20년간 일자리는 6만개, 인구는 10만명 불어났다. 지역 대학이 일궈낸 '말뫼의 부활' 스토리다.
지자체에 대학재정 50% 넘기는 건 모험
엘베강의 기적과 말뫼의 부활은 윤석열정부가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국정과제로 내건 이후 외국의 성공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다.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부는 외국처럼 지방대를 살리겠다며 이번에도 요상한 용어를 만들었다. 라이즈(RISE)다. '지역혁신중심대학 지원체계(RISE,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의 약어다.
정책의 핵심은 2025년부터 교육부 재정지원 권한의 50%를 자치단체로 넘긴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내년까지 경남·경북·대구·부산·전남·전북·충북 등 7개 시도에서 라이즈를 시범운영하고 2025년에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재정지원사업을 통합한다. RIS(지역혁신), LINC 3.0(산학협력), LiFE(대학평생교육), HiVE(전문직업교육), 지방대활성화 사업 등이다.
올해 교육부 대학 재정지원사업 예산은 4조4000억원이다. 이중 절반을 지자체에 넘긴다면 2025년 지자체가 주무를 예산이 2조원이 넘는다. 일종의 모험이다. 특히 교육부는 일부 대학은 '글로컬(Glocal) 대학'으로 선정해 각 대학에 연간 200억원씩,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과연 라이즈가 떠오를 수 있을까. 다섯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지방대의 '라스트 댄스(Last Dance)'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학생수는 급감한다. 고등교육 문외한인 광역자치단체가 감당할 수 없다. 일부 지자체가 신설했다는 라이즈 전담부서는 코미디다. 명패만 내걸고 직원 몇명을 배치했을 뿐이다. 교육부가 대학구조조정을 차도살인(借刀殺人)하려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교육부의 정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둘째, 지자체·대학·산업계가 참여하는 고등교육정책 심의·조정기구인 '지역고등교육협의회(가칭)'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단체장은 선출직 정치인이다. 정파적 요소가 대학을 지배하며 라이즈를 선거에 악용할 수도 있다.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대학 예산 정파적 이용 막을 장치 필요
셋째, 라이즈의 성패는 특화산업과 인재유치에 달려있다. 현재의 지자체 실력으론 드레스덴과 말뫼의 부활은커녕 '세발낙지 마을' 같은 코미디가 벌어질 수 있다. 바이오헬스나 반도체, 인공지능(AI) 분야 인력을 지방에 유치할 획기적인 지원책과 방안이 필요하다.
넷째, 지방의회의 역할 정립이다. 초중등 예산은 광역지방의회 교육위원회가 담당하지만, 고등교육 예산에 대한 정의가 없다. 대학사업을 관리할 라이즈센터를 둔다면 예산은 지방의회를 안 거쳐도 되나. 지방의회는 핫바지로 두는 것인지 명확한 구분이 시급하다.
다섯째, 지자체가 매칭펀드로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 전국 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도 안된다. 지자체가 대학재정 '소매상'이 되어선 안된다. 지자체는 총 예산의 1%를 대학에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