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얀마 군사 정권은 아세안의 계륵인가

2023-03-17 15:16:07 게재

아세안 의장국 인도네시아, 미얀마에 5개 합의 이행 압박 … 흘라잉 군부, 모든 당사자와 대화 약속하고도 이행 미뤄

정해문 전 태국대사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아세안이 부심하고 있다. 작년, 재작년과 달리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한 인도네시아가 미얀마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작년 11월 발리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국제적 위상이 크게 고양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이를 발판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못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역사적 유산을 남길 수 있을까?

2021년 2월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로 극도의 혼란과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는 군부와 저항 세력 간의 격렬한 대치로 내전에 휩싸여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차근차근 뿌리 내린 민주주의 제도는 송두리째 뿌리가 뽑히면서 유린당하고 있다. 반면, 지난 10년간 정치적 선택의 맛을 본 젊은 층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겠다는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우며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끌고 있다. 미얀마가 실패 국가로 전락하여 지역 정세 불안의 단초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얀마 평화 회복을 위한 아세안의 역할 = 국제사회는 미얀마의 평화 회복을 위해 아세안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해 왔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아세안은 2021년 4월 미얀마 군사정부의 민 아웅 흘라잉 최고 지도자가 참가한 가운데 자카르타에서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미얀마 평화 회복을 위한 다음 5개항에 합의했다.

(1)미얀마내 폭력 즉각 중단 및 모든 당사자들의 최대한 자제 (2)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모든 당사자간 건설적 대화 개시 (3)아세안 의장의 특사가 아세안 사무총장의 지원을 받아 대화 과정의 중재 촉진 (4) 아세안 인도적 지원 센터를 통해 인도적 지원 제공 (5)아세안 특사와 대표단이 모든 당사자와 면담하기 위해 미얀마 방문 등이 그것이다.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2021년 브루나이와 2022년 캄보디아의 의장국 재임시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쿠데타에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이 예상을 초월하자 당황한 군부가 이를 구실로 합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룬데 일차적 책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오른쪽)이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사무국에서 열린 아세안 조정협의회 회의에서 돈 쁘라맛위나이 태국 외교장관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악화하는 미얀마 정치상황도 심도있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 AP=연합뉴스


이어 미중 패권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분열돼 유엔 차원에서 무기 금수를 포함한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를 마련하지 못한 점도 미얀마 군부의 강경한 입장을 꺾지 못한데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군부의 무자비한 쿠데타 반대 시위 진압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자기 안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세안을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아세안의 위상과 권위 및 위신에 손상을 가하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세안이 과연 미얀마 사태에 연관성이 있느냐는 주장까지 분출되기도 했다.

◆올 아세안 의장국 인도네시아의 해법 =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 인도네시아가 등판했다. 미얀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국제적 리더십과 역량을 두루 갖춘 나라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및 경제면에서 아세안의 약 40%를 차지하며 사실상 아세안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민주주의의 지구적 확산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역내 중추국가 이다, 역외국들도 올해 인도네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활동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올 초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 하자마자 미얀마 문제 해결에 긴박성을 부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2주년을 맞은 지난 2월 1일 태국 방콕 주재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화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방콕 로이터=연합뉴스


우선 조코위 대통령은 아세안 사무국에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특별 사절 사무소'를 설치했다. 이와 동시에 아세안 특사 임명 수순을 밟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미얀마 사태 해법은 2021년 4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5개항 평화계획 이행에 기초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4일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5개항 합의사항을 수용하고 이를 완전히 이행하는 것을 서약했다. 회의후 기자회견에서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5개항 합의사항은 미얀마 사태를 단합된 방식으로 해결 하는데 핵심적 조치임을 강조했다. 몇몇 아세안 관리들에 의하면 자카르타는 미얀마의 '수렁'이 올해 아세안 어젠다를 지배하는 것을 수수방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미얀마 군부가 아세안을 인질로 삼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G20 정상회의에서 성공을 거둔 인도네시아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미얀마 사태 해결의지를 다지고 있다.

◆아세안, 미얀마내 모든 당사자 참여 대화 추진 = 앞의 회의에서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미얀마에서 '포용적 국민대화'를 준비하기 위해 5개항 평화계획 이행에 있어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도록 공동으로 미얀마를 압박했다. 향후 6개월은 인도네시아와 미얀마가 그들의 다음 수순의 전략적 포석을 심사숙고 하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진행 중인 분규에 개입된 모든 이해 당사자들과 이미 연락을 취하고 있다. 포용적 국민 대화 성사 여부는 군부가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단체들과 기꺼이 대화하겠다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국민통합정부', '종족무장기구' 및 '국민방위군'을 대화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통합정부하의 느슨한 구조의 야당 연합은 이제 전환점에 처해 있다. 국민통합정부는 인도네시아 및 말레이시아와 같은 아세안 회원국과 미국, EU 등 국제사회로부터 더 많은 승인과 인정을 받고 있다. 국민통합정부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에는 엘리트층의 동의와 대중의 지지, 포용적 참여, 행정 역량, 중앙 집권화 조치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미얀마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해법을 구상하든 인도네시아는 미얀마 내전으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는 아세안 회원국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태국과 미얀마는 경계가 획정되지 않은 2401km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태국 당국은 미얀마 종족 그룹 간의 충돌이나 종족 그룹과 중앙 정부 간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국경을 넘어 태국 쪽으로 피신하는 미얀마 마을 주민들의 유입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미얀마 위기로 30만 명 이상의 미얀마 난민들이 임시 거주하고 있는 나라다. 특히, 미얀마에서 차별받고 살아온 '로힝야' 무슬림들이 피난민들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미얀마 실패는 지역 전체 불안정 연결 = 아세안으로서는 미얀마 사태 해결 모색 과정에서 한국을 포함한 대화 상대국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미래의 어떠한 정전과 인도적 지원이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안와르 이브라힘 신임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2일 필리핀을 방문해 미얀마 군부의 폭력 행사 관련해 아세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라고 촉구하면서도 미얀마가 아세안에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러 곳의 업저버들은 미얀마의 잠재적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미얀마가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면 마약, 초국경 범죄, 인신매매, 불법 무역 및 광범위한 불안정 등의 재앙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미얀마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및 인도와도 매우 긴 국경을 공유하고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차지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런 만큼 미얀마의 실패 국가로의 붕괴는 지역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얀마의 민주적 헌정 질서 회복과 안정에 아세안을 비롯한 국제사회 전체의 공통 이해가 걸려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얀마 군부가 '국가내 국가'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지만 모든 미얀마 유권자들을 정치 과정에서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유권자의 83.2%라는 거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 사회는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꺾이지 않도록 계속 지원해 나가야 한다. 유엔 안보리 차원에서 미얀마에 대한 무기 금수를 포함한 실효적인 제재 결의를 채택하도록 국제 여론을 규합해야 된다. 동시에 아세안의 미얀마 5개항 평화계획이 이행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협력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미얀마가 빠른 시일 내에 현재의 알쏭달쏭한 '계륵' 위치에서 동남아의 마지막 '숨은 보석' 자리를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