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KT 경영공백의 책임
정기주주총회에서 KT는 당초 이사 7명을 선임할 계획이었지만 대표이사 포함 이사 후보 모두가 중도사퇴하면서 단 한명의 이사도 선임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권에서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연일 강조하고 국민연금까지 나서 CEO 선임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선임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란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다.
정권이 KT에 바라는 것은 낙점한 대표이사의 선임 및 이사회 구성일테지만, 과연 이것을 소유분산기업의 바람직한 지배구조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정권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KT CEO 선임을 둘러싼 논란의 시작은 '쪼개기 후원'으로 재판 중인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을 이사회가 결정하면서부터다. 민간기업에 대한 정권의 외압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한 것이지만, KT 이사회가 애초 부적격 대표이사 후보를 내정함으로써 외부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사 후보들은 총회 전에 모두 사퇴하는 무책임한 모습까지 보였다. 이번 혼란과 경영공백에 대해 KT 이사회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정권외압 부적절, KT 내부도 문제
사실 KT 이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문제점을 드러냈다. 먼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 관련 제재합의금 76억원 상당의 손해에 대한 회복조치와 구현모 등 책임 있는 임원에 대한 해임 요청이 있었지만 KT 이사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사주 활용도 문제였다. KT는 2021년 말 기준 지분 9.7%, 취득금액으로 1조원어치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보유목적은 주가안정을 위한 주주가치 제고였다. 하지만 KT는 자사주 80% 가량을 우호지분 확보에 활용했다. 일례로 작년 9월 현대차, 모비스와 자사주 맞교환을 통한 상호주 형성을 결정함으로써, 우호지분 7.7%를 확보했다. 거래 시점이나 규모로 볼 때 사업제휴보다는 경영진의 우호지분 확보 목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KT 이사회는 동조했고, 그 결과 일반주주들은 지분가치가 희석되는 권리침해를 입었다.
이 문제는 총회의 주요 쟁점이었다. 주주인 네덜란드 연금자산 투자회사 APG와 경제개혁연대는 KT의 상호주 보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관변경 주주제안을 했다. 회사는 검토 끝에 주주제안 사항 중 자기주식에 대한 보고의무 신설과 자기주식을 통한 상호주 취득 시 총회 승인을 얻도록 하는 제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해 회사의 정관변경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번 KT 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은 전부 철회됐지만, 정관변경 안건은 참석주주 2/3 이상 동의를 얻어 모두 가결됐다. 이는 자사주가 경영진의 우호지분 확보에 활용되는 관행에 대해 주주들이 직접 제동을 건 의미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역량있고 독립적 인사로 이사회 구성을
지금 KT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차기 이사회 구성이다. 방향은 명확하다. 정권 낙하산이 기업경영에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KT 내부자들의 참호구축으로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오로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를 견인할 수 있는 역량 있고 독립적인 인사들로 KT 이사회가 채워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