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소소한 일상 지켜야 지방소멸 막는다

2023-04-06 12:08:16 게재
임경수 퍼머컬처전문가, 로컬플랫폼 브랜드쿡 COO

우리는 간혹 문제의 핵심을 혼동한다. 몇해 전 대학에서 사회적기업과 관련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한 학생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농촌노인의 고독사에 관심이 있어 IT 기술을 통해 고독사를 막는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농촌에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필자는 그 청년에게 "해결하고 싶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필자 질문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 그에게 "고독사는 고독의 결과물이지 않을까"라고 했더니 조금 뒤 무언가 깨달은 듯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니 총총 사라졌다. 농촌노인이 겪고 있는 문제는 혼자 죽는 고독사가 아니라 혼자 쓸쓸히 사는 고독이다.

며칠 전 지방소멸과 관련한 토론회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도의 한 산촌 지역에 갔다. 강원도는 우리나라 평균보다 더 빠른 인구감소를 보이며 20대의 인구가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강원도의 전문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구변화에 '적응'하는 전략과 '완화'하는 전략으로 나누어 고령자의 품격있는 삶의 지원, 젊은이가 좋아하는 삶터와 일터의 조성, 일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미래산업 육성, 함께 잘 사는 지역만들기, 스스로 만드는 지역소멸 대응 등의 5가지 사업을 제안했다.

청년인구 유입에만 방점둔 지방소멸 대책

이 행사를 주관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1980년 13만명이 넘던 인구는 2021년 3만5000명이 되었고 거의 모든 읍면이 기준상 소멸위험 지역이거나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료 건강 청년 일자리 주거 복지 교육 교통 문화관광 등 군정의 전 분야에 걸쳐 지방소멸에 총력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두 청년인구의 유입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이주할 청년을 위한 주거지원, 청년 일자리 창출과 창업지원에 더 많은 예산을 할애할 계획이었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진행한 지역의 청년창업 관련 토론회는 빈자리없이 호황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러한 정책으로 청년 인구는 늘어날까. 혹시 강원도의 한 지역에 청년 인구가 늘어난다면 그건 다른 지역 청년이 유입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체적으로 인구는 줄고 있는데 위기라는 모든 지역의 인구를, 그것도 청년인구를 늘릴 수 있는가. 어떤 청년이 다행스럽게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창업해 성공한다면 이 지역에 계속 산다는 보장은 있을까. 더 나아가 인구증가, 특히 청년인구가 는다고 해서 이 위기는 사라질까. 어느 정도의 인구가 늘어나야 위기는 극복되는 것일까.

지역과 관련한 많은 일이 그렇듯이 지방소멸 대응과 관련해서도 지역 내부를 세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텃밭농사로 지은 쪽파를 다듬어 그나마 남아있는 오일장에 나가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반나절을 걸어나가야 하는 농협구판장에서 간신히 사온 막걸리에 의지해 고추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들이 있다. 단열이 안되는 집에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한국말이 어눌해 자기 아이들도 그렇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다문화 여성들이 있다. 학교급식이 없다면 제대로 된 한끼를 먹지 못하는 조손가정의 아이들도 있다. 도시에서 청년을 들이기 전에 더욱 열악해진 생활조건 속에 살고 있는 현재의 주민들을 먼저 봐야 한다.

인구 숫자가 아니라 무너지는 일상이 문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전북 완주군의 청년들이 자신들이 경작하는 밭에 스크린을 걸고 모기에 물리면서 영화를 보는 '불편한 영화제'를 너멍굴이라는 골짜기 마을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 그 영화제를 홍보하는 포스터에는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은, 여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쪽파를 다듬는 할머니도, 고추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도, 한국어가 어눌한 베트남 여성도, 잠시 부모와 떨어져 시골의 할머니와 살고 있는 아이들도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 농촌이어야 하지 않을까. 창업을 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미래산업이 없어도, 누구나에게 괜찮은 곳이 되어야 지역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고독사가 아니라 고독이 농촌노인 문제의 핵심이듯이 지방소멸은 인구라는 숫자가 아니라 무너지고 있는 지역주민의 일상이 그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