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중립국 순례에서 배우는 지혜

2023-04-07 11:55:38 게재
조 현 서울대 객원교수, 전 유엔대사

우크라이나전쟁은 여러가지 예기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0여년 간 중립정책을 고수해온 스웨덴이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나마 중립을 표방해온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전술핵무기 배치를 허용했다. 전쟁의 블랙홀은 중립으로 비켜나려는 나라들을 빨아들인다. 미중갈등이 심화되면 동북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립국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영감을 얻어 보자.

스위스는 1499년 독립 이래 중립으로 살아왔다. 유럽 전역을 휩쓴 나폴레옹전쟁과 세계 제1, 2차대전도 피해갔다. 알프스의 험준한 산악이라서 침략이 어렵고 점령한다고 해도 실익이 크지 않았기에 중립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국민들이 단합해 만든 고슴도치형 국방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산악의 천연요새는커녕 국토방위에 취약한 해안국 코스타리카는 다른 연유로 중립국이 됐다. 중남미 최초의 자유선거를 치른 평화민주국이다. 그러나 1948년 군부의 반란으로 2000여명의 국민이 사망한다. 다행히 군부를 제압한 정부는 아예 군대를 폐지해버린다. 1983년에는 영세중립국이 된다. 열강의 각축장이 아니고 인접국들의 침략도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정학적 축복을 받은 셈이다.

저마다 다른 중립국의 성공과 실패 사례

아이러니하게도 이웃국가의 분쟁이 중립국을 만든 경우도 있다. 소련의 공화국으로 있다가 1991년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이다. 인접한 타지키스탄에서 분쟁이 일어나자 니야조프 대통령은 중립을 선언한다. 중앙아시아에서의 분규를 우려하면서도 이들의 결속도 반기지 않는 러시아는 재빨리 중립 지지를 선언한다. 유엔도 1995년 이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쉽게 중립국이 된 사례이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혹독한 시련 끝에 중립국이 되었다. 1차대전을 일으켰던 거대한 제국은 패전으로 작은 나라가 된다. 제 1공화국이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했던 정치인들은 심한 정쟁을 계속한다. 나치 독일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데 정쟁에 염증이 난 국민 일부가 부추겼다고 한다. 나치는 국민의 환호 속에 많은 정치인들을 수용소로 보낸다. 여기에서 이들은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는 맹약을 맺었다고 한다. 나치 패전으로 오스트리아는 승전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되는데, 이때 치러진 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한다.

소련은 사회당의 집권이 소련의 위성국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지만 사회당은 공산당이 아닌 보수당과 협력을 하면서 소련의 회유를 물리친다. 끈질긴 노력 끝에 1955년 4개국의 군대를 철수시키고 영세중립을 선언한다. 이 값진 승리는 나치수용소에서 맺은 정치인들의 맹약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영세중립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영세중립국이었으나 제1, 2차대전 때 독일이 침략하자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한다. 베트남전쟁 중 중립을 선언한 라오스도 베트남의 침공으로 중립을 포기한다.

중립국이 아니더라도 중립정책을 고수할 수는 있다. 2차대전 당시 스웨덴이 중립을 선언해 나치의 점령을 피했고, 냉전체제에서는 핀란드가 반 소련 전선에 서지 않음으로써 침략을 받지 않았다.

몇년 전 어느 학자로부터 우리도 얼른 통일을 달성하고 중립을 선언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구한 말 유길준은 중립론을 폈으며, 고종은 미국 맥킨리 대통령에게 영세중립국을 희망하는 친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해방정국에는 분단을 우려하며 중립국 방안을 주장한 여운형이 있었다.

섬세한 균형외교로 지정학적 어려움 극복

그러나 외교정책은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지 희망에 근거할 수는 없다. 오늘의 분단상황은 북한의 핵위협으로 위험한 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대한 대처가 시급하고 전쟁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장기적으로는 분단 상황을 극복하면서 통일기반을 만들어가야 하겠지만 통일 또한 남북간의 합의로만 될 리가 없다. 분단이 외세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헤게모니를 추구하는 이웃과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못난 이웃이 있다. 중립으로 나가기에는 지정학의 족쇄가 너무 무겁다. 이제 오히려 한미동맹이 더 중요해졌다. 그래도 우리가 처한 지경학적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구하면서 활동공간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립국 순례에서 얻어야 할 지혜가 아닐까? 한반도에 진영간의 단층선이 더 견고해지거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섬세한 균형외교를 해나가는 것만이 지정학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