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국 9단선에서 출발한 남중국해의 두 전선

2023-04-07 10:53:45 게재

필리핀 정부, 중국 턱밑에 미군기지 4곳 공개 … 남중국해에 대한 원칙있는 외교기조 복원 필요

정해문 전 태국 대사

남중국해를 둘러싼 분규는 크게 보아 2개의 대형 전선(戰線)으로 형성되어 있다. 아세안-중국 간 분쟁을 한 축으로 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법 옹호국들과 중국 간 대결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두 축 모두의 한 가운데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남중국해 9단선(nine-dash line)이 자리 잡고 있다. 9단선 이내 수역은 남중국해 전체의 80~90%를 차지한다.

지난 2월 10일자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어떻게 9단선이 남중국해 긴장에 기름을 붓고 있는가?"라는 기사에서 9단선의 유래를 집중 조명하면서 분쟁의 여러 측면을 다뤘다. 2002년 아세안-중국 양측은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을 채택, 갈등 요인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보다 구속력 있는 '행동규칙'을 성안하기 위해 2013년 9월부터 협상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 해군 7함대 순양함 USS Chancellorsville(CG 62)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미 7함대 공보실은 "미국은 국제법이 허용하는 모든 곳에서 비행, 항해 및 작전 할 수 있는 모든 국가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고 밝힘. 사진 미 해군 7함대 홈페이지.


반면, 중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남중국해 9단선은 세계 해양 질서를 규율하는 유엔해양법협약과 정면충돌한다. 중국은 남중국해 9단선 내 수역을 자신의 내해로 선포, 이 안에 있는 도서, 암초, 물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국제법 기본 원칙인 항행의 자유와 상공 비행의 자유를 인정치 않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 갈등을 빚으며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6년 7월 국제중재재판소는 중국이 주장하는 9단선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중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중국해는 세계 주요 해상 교통로의 하나로서 연간 3조4000억달러의 물동량이 통과하는 국제 무역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남중국해는 전 세계 어족 자원의 12%를 차지하는 수산물의 보고이며 해저에 엄청난 규모의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자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소개된 중국 9단선 관련 내용과 지도. 사진 이코노미스트

남중국해 9단선과 유엔해양법

이코노미스트 분석에 따르면 국민당이 중국 내전에서 패배하기 1년 전인 1948년 무렵 국민당 정부는 9단선의 정통성을 공식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1949년 공산당이 중국 내전에서 승리하자, 공산당은 9단선을 유지하고 9단선 주변에 신화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9단선 주장은 현대 해양법에 근거가 없다. 1982년 합의되고 중국을 포함 168개국이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연안국은 연안 기선으로부터 12해리의 영해를 가질 수 있으며 영해 내에서는 주권을 보유한다. 동시에 연안국은 연안 기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으며 이 수역 내에서 시추, 채광 및 어획권을 갖는다.

2013년 필리핀은 남중국해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중국의 불법 행위에 대해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했으며 2016년 7월 중재재판소는 9단선에 근거한 중국의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중국은 이 판결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전통적 해양권리 주장이 유엔해양법 원칙을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9단선이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이웃 아세안 연안국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해양 경비정은 수시로 이들 연안국들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 들어가서 어로 및 시추 활동을 방해하거나 자국 해상민병대 어선단의 불법 어로 활동을 엄호하여 이들 연안국들의 강력한 항의와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과 행동규칙

아세안과 중국은 2002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막기 위해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을 채택, 남중국해 분쟁을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양측은 선언 내용을 구체화하고 구속력 있는 이행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3년 남중국해 '행동규칙' 체결 추진에 합의했다.

2018년부터 '행동규칙' 초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가운데 코로나 사태로 협상의 동력이 떨어져 주춤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인도네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초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아세안-중국 '행동규칙' 협상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외교부는 회의 결과 양측 간 입장차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와 중국 외교부는 모두 공통적으로 연내 '행동규칙' 협상 빈도를 증가시켜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3월 10일자 닛케이 아시아는 회의 직후 인도네시아측 수석대표의 발언을 인용하며 남중국해상 사고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안보 핫라인 훈련을 연내 실시하기로 한 점에 주목하였다.

아세안-중국 협상 개시 시점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크리튼 브링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미국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행동규칙'을 기대한다고 말하면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국제사회의 큰 이해가 걸린 남중국해 '행동규칙' 협상 앞에 놓인 장벽은 무엇일까? 아세안 의장국 인도네시아와 중국이 이번만은 협상의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을까?

아세안과 중국은 현격한 입장 차이를 줄여야 하는 어려운 협상에 직면해 있으며, 아세안으로서는 내부 결속을 강화하면서 연합 전선을 유지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군사 요새화와 미국의 항행자유 관철이 충돌

영유권 주장과 국제 해로 보호 원칙 사이에 물러설 수 없는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공세적 행동을 강화해 온 중국에 대해 미국의 외교적 비난과 군사적 압박이 거세지는 등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우발적으로든 아니면 의도적으로든 양 강대국 간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리차드 티블스 EU 인도태평양 특사는 EU가 남중국해에서 항해의 자유와 국제법 존중을 촉진하기 위해 공동 군사훈련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밝혔으며, 필리핀은 미국, 호주와 함께 남중국해에서 합동안보순찰을 실시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지난 2월 AP 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왜 남중국해 분쟁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긴장 수위를 일촉즉발 수준으로 계속 높여 갈까?

중국은 9단선 안은 자신의 바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2012년부터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매립공사를 통한 인공 섬 건설, 군사 요새화하고 있으며 동시에 해양 경비대와 해상 민병대를 육성하고 이들에게 남중국해 수역의 큰 권역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권을 부여하였다. 인공섬은 사실상 이들 경비대와 민병대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중국은 2016년 7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남중국해 연안 국가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활보하면서 이들 국가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제사회는 국제수로인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와 상공 비행의 자유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 국제법 원칙이자 확립된 해양 질서라고 맞서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 해군은 지금까지 연간 수차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실시하였으며, 몇 년 전에는 미 핵추진항공모함 3척이 동시에 필리핀해와 그 주변 태평양 해역을 순찰하면서 중국에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이처럼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간 패권 경쟁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가운데 4월 4일 필리핀 정부는 중국 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에 따라 미군이 추가로 사용하게 된 군 기지 4곳을 공개했다. 이 중 3곳이 대만과 불과 400여 km 떨어진 남중국해의 인접 지역으로 결정되었으며 지리적으로 중국 본토의 '턱밑'에 가깝다. 나머지 한 곳은 9단선 내 스프래틀리 군도에 인접한 팔라완 부근의 발라박섬이다. 이와 관련 필리핀 국방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남중국해 무역로를 보호해야 한다" 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우리가 취할 입장

남중국해는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로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국제해상교통로이다. 연간 우리 무역고의 30~40%, 원유 도입량의 90% 이상(코로나 이전)이 운송된다. 우리나라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그리고 조약 당사국으로서 국제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안정과 평화, 항행의 자유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내 안보 현안인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한국이 기존의 방관자적인 침묵외교를 계속한다면 한국의 전략적 존재감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는 우리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내야하는 만큼 아세안과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남중국해에 대한 원칙 있는 외교기조 복원이 필요하다. 한국은 국제법과 다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남중국해 관련 외교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국제법 위반 행위가 발생할 경우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이를 비판하는 다자주의적 입장표명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