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봄꽃의 과학
'막대무화공절지(莫待無花空折枝, 꽃이 진 가지 함부로 꺾지 마세요)'. 당나라 여류시인 두추랑(杜秋娘)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지은 시 '금루의(金縷衣)'다. 그녀는 시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 시 한수로 총애 받는 황비가 되었다. 예로부터 꽃이란 숨죽이고 기회를 기다렸던 일들이 약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한창이다. 봄은 꽃의 계절이지만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 지구상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식물들은 약 90% 정도다. 꽃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현화식물(顯花植物, Angiosperm)의 한 기관일 뿐이다. 현화식물이란 생식기관으로써 꽃이 있고 열매를 맺으며 씨로 번식하는 고등식물을 말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매 계절마다 기다리는 꽃이 실상은 식물의 생식기라는 점에서 거부감을 가질 법하지만 이로 인해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인 것은 맞다.
봄꽃이 잎 없이 꽃을 먼저 피우는 이유
대부분의 식물들은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왜 봄에 피는 꽃들은 싹도 잎도 없이 꽃을 먼저 피울까? 이것이 단지 종족번식을 위한 경쟁 때문이라는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않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해 종족을 번식하는 동물과는 달리 식물은 움직일 수가 없으니 암수가 만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짝짓기를 대신해 주는 매개체가 필요한데 벌이나 나비 혹은 바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봄꽃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이유는 짝짓기 매개체인 곤충들에게 잘 보이려는 속셈 때문이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식물 에너지의 대부분은 잎의 광합성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겨우내 이파리가 없어 광합성을 못했던 봄꽃 나무들은 다른 풀이나 나무들의 잎이 자라 햇볕을 가리기 전에 번식해야 하기에 적은 에너지 만으로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서 싹을 틔워 잎을 나게 하거나 줄기를 자라게 할 겨를도 없다.
심지어는 벌을 유인할 향기도 꿀을 만들어 낼 에너지도 별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봄꽃은 색깔만 화려할 뿐 향기가 없다. 꽃가루가 바람에 잘 날리는데 방해가 될 이파리조차도 내지 않는다. 겨우내 굶주렸던 벌들은 꽃을 향해 돌진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꿀을 얻지 못해 이 꽃 저 꽃을 열심히 배회하며 꿀을 딴다. 반대로 봄꽃은 이런 벌들의 목마름을 통해 양질의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다.
이파리 없는 알몸 봄꽃들이 지고 나면 이파리를 입은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꽃들은 아름다운 색깔보다는 강렬한 향과 꿀로서 다른 꽃들과의 유전자 퍼뜨리기 경쟁을 벌인다. 5월의 장미, 6월의 밤꽃, 7월의 아까시꽃(아카시아) 향기가 강렬한 이유가 바로 여기서 설명된다.
봄꽃이 필 때 가을꽃은 준비조차 하지 않는다. 매화 벚꽃 복숭아꽃 살구꽃 등 과실수는 주로 봄에 꽃이 피고 국화 코스모스는 가을에 핀다. 분명 봄과 가을의 기온은 비슷한데 꽃이 순서를 잊지 않는 이유는 기온과 낮의 길이, 그리고 햇볕의 강도를 감지해 때를 알아차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옛말은 봄이 가을보다 낮이 더 길고 햇볕이 강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고 꽃들은 이를 알아차렸다.
포스트코로나 주인공은 한국이라고 했는데
3년 전 세계의 저명한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리더로 한국을 지명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한국기업은 세계시장에서 '놀라운 기회(Tremendous opportunity)를 잡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역사적 기회가 우리에게 올 것을 예견한 것이고 그 기회는 반드시 잡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옳지 않다. 어설픈 국가리더십을 탓하는 것조차도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꽃들은 한창인데 이 땅에 봄은 언제 올 것인가. 그래서 3년 전의 그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뱉은 말을 주워담기 바쁘다.
공자는 '싹이 나고도 꽃이 피지 못할 수가 있고 꽃이 피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가 있다(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고 했다. 우리의 절체절명인 이 순간과도 같다. 지금 우리에게는 곤두박질치는 나라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정치력과 경제적 역량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