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국의 영향력 커지자 아세안 고민 깊어져

2023-05-04 10:47:45 게재

중국 대아세안 수출 5년만에 2배 성장 …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우려" 64.5%

박번순 아세아문제연구원

역사적으로 중국의 동남아 진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현재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아세안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대내개방을 가속화는 동시에 고도성장에 필요한 원료확보, 시장개척, 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중국기업의 국제화, 즉 주출거(走出去)를 장려했다. 중국기업들이 즐겨 선택한 곳이 자원과 화교기반이 있는 아세안이었다. 이후 아세안에 공을 들인 중국은 한국과 일본보다 먼저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일대일로(BRI) 역시 아세안을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었다.

◆아세안내 수입보다 중국 수입 더 많아 = 특히 BRI의 일환으로 중국은 아세안의 인프라 개선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운남성의 쿤밍과 라오스의 비엔티안을 연결한 철도가 여객과 화물을 실어나르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카르타와 반둥을 잇는 고속철도가 올해 8월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에 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의 동부임해철도는 말레이시아 반도의 동북부에서 남하해 쿠안탄에서 반도를 횡단, 서해안까지 연결할 예정인데 665km의 철도 연변에는 항구와 공단이 들어서게 된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어 2026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중국의 아세안 수출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면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부문에서 아세안을 압도하면서 아세안에 소비재를 수출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소·부·장 부문으로 수출구조가 고도화되었다.


중국의 대아세안 수출은 2022년 5673억달러로 2017년에 비해 5년 만에 2배가 되었고, 총수출에서 아세안의 비중은 이 기간에 12.3%에서 15.8%로 증가했다. 아세안 기준으로 보면 2021년 아세안 전체 수입 중 중국이 23.9%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고 2022년 실적은 아직 집계되지는 않았으나 더 증가했을 것이다. 아세안이 역내무역자유화로 오랫동안 단일시장을 추진해 왔음에도 역내 수입비율보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비율이 더 높다는 것은 중국 상품의 경쟁력이 얼마나 높은 것인가를 말해 준다.

◆미중 무역갈등 후 제조업 투자 급증 = 중국에서 인건비가 상승하자 섬유봉제업체가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미얀마, 캄보디아로 남하했고, 아세안의 소득이 높아지자 내수시장을 겨냥하여 전자업체들이 생산설비를 이전했다. 또 디지털 시대에 오면서 중국의 텐센트 등 IT 서비스 업체들이 내려왔다.

최근 가장 활발한 분야가 내수산업으로 인식되었던 자동차산업이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글로벌화의 실험장으로 아세안을 선택하고 있다. 저장질리자동차가 말레이시아 국민차 업체 프로톤을 인수했고, 상하이자동차가 태국에 진출했다. 우링자동차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를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 의전차량으로 제공했다. 우링자동차는 올해 6월 필리핀에서 전기차를 출시한다. 태국은 4월 20일 중국의 장안자동차가 2억8500만달러를 투자하여 연산 1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승인했다.

중국기업의 대아세안 투자는 2021년 197억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2013년의 73억달러에 비해 2.7배나 증가한 것이다. 한때 중국의 투자가 원료부문, 부동산 투자 등에 집중되어 아세안 경제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이제는 제조업 부문이 가장 중요한 투자대상이 되었다. 특히 미중무역 갈등은 중국기업의 투자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7년 중국의 투자에서 제조업은 22.5%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86억달러로 전체의 43.7%까지 증가했다.

또한, 중국인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중국 관광객이 아세안으로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는 무려 3100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2019년 1100만명이 방문한 태국이었지만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도 전체 입국자의 30% 이상이 중국 관광객이다. 올해 1월 중국이 해외 관광 규제를 완화한 이후 시아멘에서 오는 첫 관광객이 방콕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부총리를 포함 3명의 장관이 "중국과 태국은 한 가족입니다. 놀라운 매력의 태국은 언제나 우리의 중국 가족을 따뜻하게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펼친 환영식에 참석했다.

1일 인도네시아 반둥의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건설 현장.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랜드마크인 이 고속철도는 시속 350km의 설계 속도로, 자카르타와 반둥 사이를 3시간 이상에서 약 40분으로 단축한다. 신화=연합뉴스


◆중국의 진출은 아세안에 중요한 딜레마 = 그렇지만 중국의 진출을 무조건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 아세안의 처지이다.

우선, 중국의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재원으로 건설되는 BRI 프로젝트의 경제성 확보 문제가 골칫거리다. GDP 규모가 188억달러에 불과한 라오스가 60억달러의 철도를 건설하여 수익성을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라오스의 대미달러 환율은 2021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두배나 뛰었다. 인도네시아의 고속철도는 72억달러나 투입되었는데 중국에서 빌린 돈의 이자는 3%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말레이시아의 동부임해철도는 적어도 150억달러가 소요될 예정인데 완공이 3년은 더 남았지만 벌써 수익성이 걱정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중국과 아세안 각국이 합작사를 설립하여 추진되기 때문에 투자비용이 모두 아세안 각국이 부담할 것은 아니겠지만, '부채의 늪'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싱가포르까지 고속철을 부설하려는 중국이 공을 들여왔던 태국 내 고속철의 경우 태국이 직접 재원을 조달하여 천천히 철도를 부설하겠다 하여 중국을 애타게 하고 있다.

무역투자에서도 아세안은 불만이다. 중국은 품질 좋은 공산품을 아세안에 수출하면서 2022년 1532억달러의 흑자를 보았다. 중국 수입상품 때문에 아세안의 국내생산은 압박을 받는다. 그런데 중국의 흑자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압박할 때 아세안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실제로 베트남, 태국 등의 대미수출이 증가했다. 문제는 소부장 산업 기반이 취약한 아세안은 이들을 중국에서 수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아세안이 소부장 부문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어렵기 때문에 중국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식당, 마사지업소, 술집 파고드는 중국 = 중국인의 아세안 여행이나 이주도 정치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오랫동안 아세안 각국은 우선 급한 마음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경 등에 경제특구를 건설하고 중국의 자본을 유치하여 카지노를 건설했다.

중국인은 방콕이나 말레이시아의 휴양지에 콘도미니엄을 사들이고, 아세안 저개발국에는 부동산을 사들였다. 코로나는 중국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관광객 유입이 끊어지고 라오스의 관광도시가 폐허처럼 변했을 때 한국인 등 많은 외국인이 발길을 끊었지만 중국인들은 서서히 루앙프라방과 비엔티안으로 내려왔다. 최근 라오스의 문이 다시 열리고 한국 여행자들이 비엔티안을 찾고 있는데, 그들이 가는 한국 상호를 단 식당도 중국인이 인수하여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이 카지노와 호텔을 건설한 캄보디아의 해양관광도시 시하누크빌은 중국인이 100만 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에 짓다가 만 볼썽사나운 건축물들이 즐비했으나 다시 활기를 보이고 그 중심에는 중국인이 있다. 실제로 시하누크빌 주요 해변은 중국어 아닌 간판을 볼 수가 없다.

험지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중국인들은 지금 이처럼 아세안 전역에서 식당, 마사지업소, 술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아세안 각국의 통제가 어려운 지하경제를 구성할 것이고, 지하경제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싱가포르의 정부기관인 동남아연구원(ISEAS)이 올해 2월에 낸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세안의 지식인들은 아세안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로 59.9%가 중국을 들고 있고, 10.5%가 미국을 들었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확대에 대해서 우려된다는 답이 64.5%, 환영한다는 답은 35.5%이었다.

또한, 지난해 일본 무역투자진흥기구(JETRO) 주도로 아세안의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향후 10년 안에 아세안의 무역과 투자를 지배할(dominate) 국가로 중국을 답한 비율이 무려 69.5%였다. 일본이 12.6%, 미국이 5.7%이었으니 현장에서 뛰는 기업인들이 중국의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 중국의 진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아세안이 향후 독립적으로 지속가능한 체제를 꾸려갈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신남방정책과 한-아세안연대구상을 통해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 중국의 과도한 아세안 진출은 우리의 대아세안 협력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