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종의 기후행동
코로나 종식이 남긴 희망과 과제
6일 세계보건기구(WHO)는 3년4개월 만에 코로나19 위기상황 해제를 선포했다. 거리에서도 마스크 없는 일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던 '코로나 사태'도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하다. 이제껏 겪은 적 없었던 감염병 대유행에서 우리 사회가 이룬 가장 소중한 성과는 우리가 함께 지켜낸 생명일 것이다. 한국의 코로나 감염 사망률은 0.13%로 인구규모와 감염건수를 고려하면 전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효과적으로 코로나를 이겨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겪은 일상의 변화는 실로 극적이다. 집 밖에서는 어디를 가든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여행은커녕 가족과 친구를 만나는 것도 참았으며, 간혹 열이 나고 목이 아프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감염되지는 않을까 스쳐지나간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안해하며 검사를 부탁했다.
그 모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방역에 참여했고,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생명을 구해낸 것이다. 코로나라는 시련을 통해 우리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경험은 가족과 이웃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확인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전세계 기후난민, 전쟁난민보다 많아
코로나 사태에서 확인한 우리 공동체의 따뜻함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온도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의 문제가 되었다. 2022년 전세계에서 발생한 기후난민의 숫자가 3260만명으로 전쟁난민보다 많았다. 올 봄 동남아에선 유례없는 폭염이 발생했고 여름에는 강력한 엘니뇨로 인한 이상기후가 예상되며 이는 다시 전세계적인 식량가격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뉴스에서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누군가의 밥상은 부실해지고, 누군가의 여름과 겨울은 더욱 고통스러워지며, 누군가는 집과 고향을 잃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기후대응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와도 같은 이슈가 있다. 바로 '일회용품 사용제한'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다. 정부는 작년에 일회용컵과 빨대 등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려 했다가 적용범위와 시행시기를 두고 오락가락한 끝에 결국 1년간 시행을 유예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일회용컵에 음료를 제공한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여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동시에 플라스틱컵이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양이 '새발의 피'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연간 소비하는 33억개의 플라스틱컵 90%를 회수해서 줄일 수 있는 양은 우리나라 연간 배출량의 0.01%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회용품 사용제한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0.01%의 온실가스 때문이 아니다. 일회용품은 우리가 가장 먼저 배제할 수 있는 불필요한 배출, 사치스러운 소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습관을 바꿔도 쉽게 줄일 수 있는,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도 다르지 않다.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전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전력수요가 많은 여름철에는 전기요금 절감분도 상당하다. 치솟는 화석연료 가격으로 전기료도 급등한 지금도 여전히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집을 찾기 어렵다.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설치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 대응 자산, 기후대응 원동력 되도록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시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하기 쉽지 않다. 개인의 실천만으로 줄일 수 있는 양은 제한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우리 개개인의 생활방식의 변화없이 사회구조와 체제변화가 일어날 리 없다. 단순한 귀찮음의 대가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줄이지 못한다면 산업과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은 요원하다.
코로나를 지나며 확인한 것은 우리 사회의 따뜻함이다. 닥쳐온 기후위기가 우리 가족과 이웃의 생명과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에서 함께 출발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낼 잠재력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말단의 문제에서 논의를 정체시키고 있는 것은 정부의 우왕좌왕인 듯하다. 코로나를 통해 함께 얻은 소중한 경험이 기후대응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정책적 의지를 모으길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