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왜 회계개혁이 어려운가

2023-05-30 11:15:47 게재
김범준 가톨릭대학교 회계학과 교수

최근 국회에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폐지하는 '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6년마다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교체하되, 기업이 자율적으로 원하는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는 별도로 금융위원회는 작년 9월 '회계개혁 평가 및 개선 추진단'을 구성했으며, 올 6월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미 자율규제로 전환된 표준감사시간을 제외하면 신외부감사법을 통해 도입된 주요한 회계개혁 조치들을 대폭 완화하는 것들이다.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서 시행된 지 4년밖에 안된 제도가 이렇게 계속해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짜인 회계정보 생산비용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가 문제

회계정보도 다른 재화나 서비스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면 시장기능을 통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계정보는 기업이 비용을 부담해서 생산하면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은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회계정보의 오류로 손해를 봤다면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다. 회계정보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기반구조이기 때문이다.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업 경영자가 회계정보를 만들고, 독립적인 외부감사인이 회계감사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회계개혁은 경영자가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를 생산하고, 외부감사인은 독립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서 회계감사를 수행하며, 분식회계등 회계부정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강화함으로써 경영자들이 재무제표 작성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고, 증권선물위원회는 외부감사인을 6년마다 지정해 독립적이고 엄격한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자본시장에서 공짜로 활용되는 회계정보의 품질은 높아졌지만, 동시에 기업들의 회계비용도 대폭 상승했다.

최근 논의들은 경기하강 국면에서 기업들의 회계비용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회계개혁 제도가 후퇴한다면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은 다시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원래 좋은 물건은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제도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은 어렵고 험난한 과정이다. 모든 제도는 혜택을 누리는 집단과 비용을 부담하는 집단이 다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을 설득해가면서 제도를 안착시키는 과정은 더욱 어렵다. 경영자들은 여전히 회계정보 생산비용을 불필요한 규제비용으로 보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회계개혁이 당장 매출이나 이익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자본시장 투명성을 높여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회계제도 개선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회계개혁 과정에서 외부감사인인 공인회계사의 공적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도 높아졌다. 만약 외부감사인들이 회계감사 과정에서 갑질을 하거나 과도한 감사보수를 청구하는 등의 주어진 권한을 남용한다면 높은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공인회계사들은 스스로 사회적 가치를 입증해야 하며, 이를 위해 엄격한 윤리기준을 마련하고 자율적인 내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경영자 인식변화와 외부감사인의 공적 책임 필요한 시점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위해 어렵게 사회적 합의로 마련된 제도를 기업부담 완화를 위해 없애거나 시행을 연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과 회계업계는 책임과 비용을 어떻게 분담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정부도 기업의 회계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등 다양한 지원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미루는 것보다 실행하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