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당국가체제와 소비주도 성장의 딜레마
중국은 신냉전과 글로벌 경기침체 등 대외여건의 악화 속에 내수 중심으로 5% 경제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실업증가와 사회불안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중국은 내수중에서 투자가 아닌 소비진작을 강조한다. 투자주도 성장전략은 수십년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4조위안의 대규모 경기진작 이후 사회전체가 투자과잉시대로 접어들면서 투자의 경제성장 견인 효과가 급속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소비주도 성장전략은 2011년 제12차 경제계획부터 공식화됐다. 중국 GDP에서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비율은 2021년 현재 여전히 54.3%에 머물고 있다. 세계 평균인 60.4%, 미국의 68.1%에 비해 낮아 확대의 여지가 크다.
중국이 경제침체를 민간소비로 극복하려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78년 개혁개방 이전 중국은 국유체제 하에 민간소비를 억제하고 중공업 중심 투자를 우선해 경제효율이 떨어져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80년대 이후 농업과 상공업에서 민간이 자기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민간의 소득 및 소비의 증대와 기업의 민수제품 생산 확대가 선순환했고, 40여년 지나 '구매력 기준 GDP'가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민간경제 침체가 소비주도 성장 가로막아
중국의 소비주도형 성장전략의 관건은 민간영역의 기업활동 증가와 취업기회 확대, 개인소득 증대와 제품수요 확대의 선순환에 있다. 민간경제는 국유경제와 달리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의 선택을 통해 자연스럽게 혁신을 이루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한다. 기업은 새 사업 발굴과 비용절감에 노력하며, 노동자는 취업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며, 국가는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희생된 약자를 보호해 국가경제 전체의 활력을 유지한다.
민간 소비지출역량 증대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재정지출 조정도 필요하다. 기존의 국방 경제 등의 투자 중심 재정지출구조에서 교육 보건 의료 복지 등의 지출을 확대해 개인의 소득창출능력을 높이고 소비지출욕구를 증대시켜야 한다. 또한 국유부문으로의 재원 할당을 줄여 민간기업 몫으로 조정하거나 농민공 등 잠재실업계층을 산업인력화하는 노력도 소비주도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국유부문이 오히려 확대되는 국진민퇴(國進民退)가 뚜렷해지고 취업의 80%를 떠맡는 민간기업의 사업의지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고등교육 확대로 산업인력을 공급해도 취업기회 자체가 부족하다. 16~24세의 실업률이 20%를 넘고 6월에 졸업하는 1158만명의 대학생들이 취업에 고민하고 있다.
4월 중국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도 예상보다 낮은 49.2에 그치면서 중국경제의 리바운딩을 기대하던 전문가들도 이제는 중국경제의 구조적 침체를 우려한다. 4월 28일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중국경제 호전에 필요한 '내재적 발전동력'과 '수요'가 부족하다고 언급한 것도 소비주도형 성장전략의 성과가 미흡함을 시사한다. 미중 경제대립과 서구와의 디커플링 등 외부 악재도 있으나 방대한 중국 국내시장의 이점을 발휘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민간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주된 원인이다.
소비주도형 성장전략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의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덩샤오핑은 '발전만이 중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發展是硬道理)한다'며 경제발전을 위해 과감한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중국이 투자가 아닌 소비주도 성장과 같은 경제개혁을 추진하면 실질GDP를 2027년까지 2.5%, 2037년까지 18%를 끌어올린다고 추산했다.
민간부문에 대한 당국의 전향적 인식이 중요
소비주도형 성장전략이 미진한 원인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복지체계 미흡으로 인한 높은 저축률, 도농·계층간 소득불평등으로 인한 저소득층의 소비능력 제약, 소비자 신용제도의 미흡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런 경제적 요인 정비도 필요하지만 민간경제의 역할에 대한 중국당국의 전향적 인식이 더 중요하다.
개혁개방 초기 민간경제 성장이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한다는 계획주의파의 우려에 대해 덩샤오핑은 민간기업이 국유체제에 도전할 '깜'이 되지 않는다는 실용적 논리와 체제유지의 자신감으로 대응했다. 중국이 당국가체제의 유지와 경제발전에 따른 민간역량 증대라는 숙명적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국경제의 미래를 가늠할 잣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