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싱가포르가 마약 문제를 다루는 방식

2023-06-09 11:33:48 게재
안영집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전 싱가포르 대사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마약이 사회에 끼치는 여러 해악을 생각할 때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마약문제 대처와 관련해 흔히 소환되는 것이 싱가포르의 마약정책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1973년 제정된 후 몇차례 개정한 약물오남용법(Misuse of Drugs Act)에 따라 마약류를 세가지 범주로 나눈다. 헤로인 모르핀 코카인 아편 필로폰 대마 등을 A급, 아편성 진통제와 국소마취제 등의 약물을 B급, 교감신경향진제 등의 약물을 C급 마약으로 분류한다.

처벌은 각 급별로 달리하며 특히 소지·사용·밀매의 세가지 범주로 나누어 단계가 높아질수록 가중처벌을 한다. 허가받지 않은 약물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최대 10년형이나 2만달러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고 파이프 주사기 흡입도구 등이 발견될 경우 마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일정 양 이상의 마약이 확인되면 밀매의 의사가 있었다고 간주하고 가장 강하게 처벌한다. 밀매 판단의 기준치는 헤로인 2g, 모르핀과 코카인 3g, 대마초 15g, 필로폰 25g 등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일정 양 이상의 마약을 소지한 경우 사형선고 또는 종신형에 15대의 태형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형선고 기준치도 매우 낮아 헤로인 15g, 모르핀과 코카인 30g, 대마진액 200g, 대마초 500g, 필로폰 250g, 아편 1200g 등이다.

일정량 이상 마약 소지하면 사형선고

이와 같은 엄격한 기준으로 인해 1991년부터 2014년까지 총 328명이 마약밀매 혐의로 사형됐으며 1994년 한해에만 76명이 사형되었다. 처벌 대상 범주는 싱가포르 내의 내국인 및 외국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싱가포르인이 마약을 한 경우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처벌한다. 자국민이 사형선고를 받은 외국 정부, 유엔, 국제 인권단체가 관대한 처분을 요청하며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하지만 싱가포르정부는 예외를 두지 않고 원칙대로 처벌한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지자 2016년 마약관련 유엔 특별총회에서 샨무감 싱가포르 내무장관 겸 법무장관은 자국의 정책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모델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정책을 바꾸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며 반박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싱가포르가 마약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오히려 19세기 초에는 싱가포르가 아편 등 마약류 거래의 중간기지 또는 환적항으로 이용되었으며 마약 밀매로 큰돈을 번 조직들도 번성했다. 특히 마약은 중국계 싱가포르 사회에서 성행했는데 부유층은 신분의 상징으로, 노동자들은 노역의 고통을 잊는 만병통치약으로 활용했다. 허가를 받은 마약굴도 성업했다. 1930년대 통계에 따르면 중국계 성인 4명 중 1명이 마약을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2차대전 기간이 끝난 1946년이 되어서야 영국 식민 정부에 의해 아편 등 마약은 공식적으로 불법화되었다.

이후에도 지하조직을 중심으로 한 마약밀매가 계속되자 싱가포르정부는 대응조치의 강도를 높여갔다. 1971년에는 내무부 산하에 마약 문제를 전담할 중앙마약국(CNB)을 설치하고 뒤이어 약물오남용법을 제정했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치료를 위해 마약재활센터도 설립해 중독자는 의무적으로 상당 기간 동안 치료를 받도록 하는 조치도 병행했다.

전담 조직과 관련법 재정비 참고해야

싱가포르행 비행기가 착륙 움직임을 시작하면 기장은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창이공항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마약 밀매가 엄격하게 처벌받는 범죄입니다"라는 기내방송을 실시한다. 정부는 수시로 마약퇴치 캠페인을 진행하며 중앙마약국 홈페이지는 각종 마약에 대한 설명, 증상, 관련 처벌에 대한 상세 설명과 함께 증강현실 기술을 통한 쌍방향적인 교육도 제공한다.

우리나라도 총체적인 방식으로 마약에 대처해 나가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전담 조직과 관련법을 재정비하고 대국민 교육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중 하나는 우리나라에 마약을 반입시키는 범죄자의 상당수가 마약에 대해 가장 강력한 처벌을 하는 중국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사회와의 공조노력도 더욱 강화해 한국을 다시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되돌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