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바라보며
우리는 길이 없는 길을 걸었다. 아이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치료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리라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섰다. 2013년 권역별 재활센터가 개원했는데 소아재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 처음으로 서명을 받았다.
부족한 병상으로 의자놀이를 하던 장애어린이가족들과 토닥토닥하자고 모임을 만들었다. 2014년 4월에 장애어린이 여섯 명이 가슴에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붙이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가슴에 그 문구를 붙이고 오를 수 없다는 산들도 올랐다.
이런 우리의 발걸음을 정부와 지자체는 모른 척했고 장애인단체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우리는 시민들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11월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대전어린이재활병원시민추진모임을 만들었고, 2015년 제1회 기적의 마라톤을 개최한 후 사단법인 토닥토닥으로 전환을 해 건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했다.
2016년 기적의 새싹 캠페인으로 전국적 공감의 확대를 가져왔고, 국정감사에서도 논의가 됐다. 하지만 정부는 전문가의 용역을 빌어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필요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 시민은 2017년 대선 후보공약과 100대 국정과제로 이끌어냈다.
새로운 소아재활의료체계 구축
이후에도 쉽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부와 지자체에 수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한편 연구용역도 하고 책도 출판했다. 2020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및 운영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시민들과 연대했다.
대전시의 밀실협약으로 공공의 이름이 위기를 맞았을 때 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호소했다. 2022년 장애어린이가족에게 설명도 없이 개원을 연기해도 참았다. 대전시는 2023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앞두고 밀실에서 새로운 운영위원회를 구성했고 당사자 가족과 시민을 대표했던 토닥토닥을 배제했다.
대한민국 첫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 건립과 개원을 시민의 이름으로 축하한다. 그런데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은 병원 하나를 여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없었던 소아재활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권역 병원을 중심으로 지역과 네트워크체계를 만들고 치료인력의 확보와 육성을 위해 근무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한편 장애어린이를 중심으로 재활과 치료, 교육과 돌봄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시작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의 칸막이를 넘어선 통합적 운영대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공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지원을 명시화해야 한다.
지난 5월 30일 열린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식에 장애아동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장애어린이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의 목소리도 없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서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
장애어린이가족 목소리 들어야
대한민국 처음으로 건립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당신들의 병원'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제대로 된 공공병원이 되도록 장애어린이가족을 비롯한 시민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듣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