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아진 서민금융, 갈 곳 잃은 금융취약층│① 문닫는 대부업체·저축은행
저축은행 신용대출 금리 20% 육박 … 대부업 더 이상 영업 못해
"저신용자 급전 빌릴 제도권 금융 없어, 대부중개업체 알아보니 연락 온 곳은 불법사금융"
연체율 상승, 2금융권 대출 규모 축소 … 조달금리 2배 올랐는데 대출금리는 상한선에 묶여
50대 윤 모씨는 올해 2월 대출 비교플랫폼을 통해 300만원을 급하게 빌리려고 했지만 낮은 신용등급으로 인해 모든 곳에서 대출이 거절됐다. 대부업체들도 대출을 거부하면서 윤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출이 가능하다는 A업체를 찾았다. 미등록 불법사채업을 하는 A업체는 300만원 대출이 가능할 것처럼 접근했다가 첫 거래에서는 50만원이 가능하고 이후 한도를 늘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윤씨 손에 들어온 돈은 35만원. 수수료와 선이자를 뗀 것이다. 이후 윤씨는 1주일마다 원금은 그대로인 채 대출 연장비와 이자로 26만원을 냈다. 1년으로 환산하면 2700% 가량의 이자를 낸 셈이다. 한 달 가량 원금의 3배 가까이 낸 후 견디다 못한 윤씨는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민원을 냈고, 협회의 중재로 A업체의 채무를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윤씨는 "코로나 당시 힘겹게 버티고 있었지만 코로나 종료 이후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현재 법원에 개인회생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체들이 사실상 신규 영업을 중단하고, 저축은행들이 저신용자들의 문턱을 높이면서 금융취약층의 자금조달 통로가 막히고 있다.
26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6월 대형 저축은행 33곳 중 신용점수 600점 이하 저신용자들을 상대로 대출상품을 취급하지 않는 업체는 17곳으로 나타났다. 5대 대형 저축은행 중에서 웰컴저축은행은 신용점수 600점 이하인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19.9%의 평균금리를 공시했다.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은 18.43%~19.99%의 금리를 공시했다. 페퍼저축은행은 600점 이하 저신용자 대출을 중단한 상태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500점 이하는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서민금융 = 수신 기능이 있는 저축은행의 조달금리는 사실상 예금금리다. 저축은행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예금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올해 1분기 적자의 주요 원인이 됐다.
예금금리를 4% 중반으로 올린 저축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연체율이 지난해말 3.41%에서 올해 1분기 5.07%로 급격히 상승하면서 저신용자들에 대한 신용대출을 줄이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법정 최고금리 한도인 20%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은 대출 시장에서 이미 대부업체들은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부업체들은 저금리 시기에도 조달금리가 4~5%였고, 법정금리 최고 한도는 20%로 인하되면서 신용대출 여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 상승 등으로 조달금리는 9~10%대로 뛰었다. 조달금리가 2배 이상 상승했고, 조달금리가 절반에 불과한 저축은행들도 법정 최고금리에 가까운 대출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신규 대출영업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대부업계의 호소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서민금융의 현실이다.
대형 대부업체들은 시장을 떠나고 있다. OK금융그룹은 소속 대부업체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는 청산시기를 내년 6월에서 올해 상반기로 앞당겼다. 이달 21일 금융위원회는 OK저축은행이 제출한 러시앤캐시 영업자산 양수도 신청을 인가했다. 러시앤캐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신규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산와대부(산와머니)는 2019년부터 신규대출을 전면 중단했고, 웰컴금융그룹은 2021년말 웰컴크레디라인대부와 애니원캐피탈대부를 정리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법정 최고금리 한도가 20%로 묶여 있다 보니 조달금리가 급격히 상승한 대부업체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시점에 왔다"며 "대부업체들은 대출을 못하고, 저신용자들은 자금 조달를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법사금융 당했는데 … "필요하면 또 어쩔 수 없어" = 급전을 빌릴 곳이 점차 사라지면서 온라인을 통한 불법사채업자들이 저신용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는 30대 김 모씨는 올해 초 급전이 필요해 인터넷을 통해 대출 중개사이트의 문을 두드렸는데, 연락 온 곳은 불법사금융업체였다. 개인파산 이력이 있는 김씨는 인터넷으로 손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말에 불법사금융인지 모르고 대출을 신청했다. 4곳에서 30만원씩 120만원 빌린 김씨는 1주일 만에 이자를 포함해 200만원을 갚아야 했다. 연장을 하려면 이자를 20만원씩 모두 80만원을 내야했다. 불어난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다른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받으면서 한달 만에 김씨가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는 1000만원으로 늘었다. 원금 250만원이 한달 만에 4배 불어난 것이다. 김씨가 불법사금융을 이용하자, 정보를 공유한 사채업자들이 앞다퉈 김씨에게 돈을 빌려주겠다고 접근했다.
김씨는 "개인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모두 이자 갚는데 쓰면서 도저히 감당이 안됐다"며 "다행히 대부금융협회를 통해 채무를 청산할 수 있었지만, 급전이 필요하면 또 다시 이들 업체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들도 대출이 많아지면 월급의 상당부분을 빚 갚는데 쓰기 때문에 병원비 등 급전이 필요할 때 더 이상 자금을 구할 수 없는 사례를 많이 봤다"며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금리가 20%를 넘어가더라도 불법사금융을 이용하는 것보다 안정적이라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정책금융 확대하고, 시장 기능 되살려야" = 남재현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정책금융을 확대해서 저신용자의 불법사금융 이용을 막고, 장기적으로 서민금융시장의 기능을 되살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서민금융을 담당하는 2금융권들이 비이자수익을 늘리려고 부동산PF에 투자했다가 부실 우려가 커졌다"며 "자금 여력이 줄어들고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서민들을 상대로 한 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상호금융권 연체율은 지난해 말 1.52%에서 올해 1분기 2.42%로 상승했다. 캐피탈사 1분기 연체율은 1.6%로 전년 같은 기간 0.8%와 비교해 2배 증가했다.
올해 미국 중소형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2금융권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선 것도 대출 감소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금융 소외 현상을 장기간 방치할 때 나타날 사회·경제적 악영향을 우려해 단기 소액 대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 수준 자체에 얽매이기 보다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금융접근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대신 이들의 출구전략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심각한 금융 소외를 해소하는 한국형 소액 대부 시장의 선례를 만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