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SG발 주가폭락' 라덕연의 물타기
지난달 29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SG발 주가폭락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된 라덕연 일당의 첫 공판이 열렸다. 예상대로 라씨는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를 부인했다. 무등록 상태로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운영한 것은 인정하지만 통정매매 등을 통한 주가조작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라씨측은 '폭락'의 원인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폭락을 통해 직접적 이익을 얻은 것이 아닌 '시세조종 여부'와 부당이득 혐의에 관해 집중해서 심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무래도 라씨가 의도한 물타기가 잘 먹히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6조)은 증권의 통정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 금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최소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이익이나 회피한 금액의 3~5배에 달하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이익 또는 회피한 금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중형에 처해질 수 있다.
라씨 일당은 본인들의 주가조작 혐의를 부인하지만 투자자 1000명 이상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수십명의 직원들을 동원해 관리하면서 주식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거래방식은 통정매매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좀 낯부끄러운 면이 있다.
투자자들, 피해자인지 가담자인지 쟁점
'투자자들은 피해자인가? 아니면 가담자인가?'라는 쟁점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투자자들 중에서는 명확하게 통정매매를 인지했던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어느 정도 예견가능한 상태에서 투자금을 건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통정매매를 인지할 수 있는 계기가 부족했다. 이 사건이 통상적인 주가조작 사건과 구조는 조금 다르지만 '밀행성'이 매우 중요한 주가조작에서 많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통정매매를 인식하게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필자가 상담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 사태 이전에 주식투자를 전혀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많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차액결제거래(CFD)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본인 명의의 CFD 계좌가 개설된 것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모두 날린 것도 모자라 본인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빚을 떠안게 돼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보다 힘든 점은 극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음에도 대중들에게는 주가조작의 공범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미래를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인데 이 영화는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범죄를 예측해서 '장래'의 범인을 색출하는 시스템이 보편화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어느 가까운 미래에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스템이 등장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증권범죄만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미연에 방지가 가능한 범죄다.
증권범죄 미연에 방지 가능한 범죄
주가조작은 어제오늘 등장한 새로운 범죄가 아니고 오래전부터 진화해온 범죄이며 충분히 그 진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SG사태를 계기로 한국거래소가 이상거래탐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보기로 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노력의 의지가 꾸준히 지속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