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거로 회귀한 '지방시대위원회'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동안은 서울(수도권) 중심 시대였는데 이제부터는 지방이 주인공인 시대가 될 것처럼 느껴진다.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 정부의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한 형태로 출범했다.
'지방'이 빠지고 '자치'가 들어간 이유
이 문제에 대해 잘 이해하려면 이 두 조직의 연혁을 살펴봐야 한다. 먼저 자치분권위원회는 김대중정부가 시행한 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그 모태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중앙정부 사무와 권한을 각 지역의 자치정부로 이관했다.
이 위원회가 참여정부에 들어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로 합쳐지고 다시 '지방분권촉진위원회'로 바뀌었다가 박근혜정부에 이르러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됐다. 문재인정부에서는 다시 '자치분권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전환됐다.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가 하나 있다. 모든 조직이름에 '지방'이란 단어가 들어 있었는데 문재인정부에 와서 '지방'이 빠지고 '자치'가 들어갔다. 단어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칭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지방'이라는 말은 '중앙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직역하면 '변방'이라는 뜻이다. 누군들 자기 지역이 '변방' 취급받기를 원하겠는가. 이런 사회적 흐름에 발맞추어 '지방'을 빼고 '자치'를 넣은 것은 우리나라의 사회 변화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처음부터 수도권 중심의 국가 개발의 무대를 지역으로 분산하겠다는 참여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조직이었고 이에 대한 지역의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
전국을 지역별로 나눠 균등하게 발전시키는 것도 아니고 균형적으로 발전하려면 누군가가 '균형'의 기준을 세우고 조정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중앙정부의 역할과 권한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와 주민을 지역발전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중앙의 힘이 강해지는 이 딜레마가 국가균형정책의 고민이다. 지역 간 과도한 유치경쟁도 중앙정부의 권한집중을 부추겼다.
'지방시대위원회' 역할에 회의적 시각
과연 '지방'이 아닌 '지역'에 더 많은 권한을 줘 '자치를 강화하는 일'을 하는 위원회와, 일을 하면 할수록 '중앙정부의 힘과 권한이 강해지는 위원회'가 통합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주도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조직의 성격 자체가 과도한 '내장지방'이 낀 구조다. 자치단체들도 '주민을 중심에 두는 자치·분권'보다 토목사업 중심의 개발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 개발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누리집에 들어가면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이 있는데 여기에 '주민자치회 고도화'가 들어 있다. 이 문구만 보면 이 정부에서 주민자치회가 더 고도화될 것 같지만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시를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이 주민자치회와 지속적인 마찰을 빚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런 현실에서 '지방시대위원회'가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박근혜정부가 야심차게 출범시킨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4년 가까운 임기 동안 단 1건의 중앙권한도 이양하지 못(안)했다. 데자뷔가 느껴지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