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고용안정' 그 너머의 세계
요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애로사항이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Z세대 직원들과 관계된 이야기들이다.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주인의식은 고사하고 소속감도 전혀 없고, 업무지시도 잘 따르지 않는다. 업무를 부여하면 고개를 쳐들고 "제가 왜요?"라며 반문하기 일쑤다. 오래 머물지도 않고 걸핏하면 떠난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벤처기업 경영자는 1년 정도면 고인 물이라고 할 정도로 구성원 변동이 심하다고 했다.
Z세대의 특이한(?) 양태는 기존 기업 시스템과 문화로는 도저히 대처불가능한 수준이다. 어쩌면 기업의 존재양식 자체를 바꾸어야 할 정도로 근원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변화를 강제하는 새로운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 협력을 하는 이른바 '긱 워커'(Gig worker)가 MZ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 수가 2022년 기준 220만명에 이른다. 주요 구성요소의 하나인 프리랜서의 경우 70% 정도가 20~3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을 감수하는 대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한다. 수입이 절대 부족하면 알바로 보충한다. 상당수가 '회사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결과다. 일부는 아예 워케이션의 일상화를 꿈꾸기도 한다.
기존세대와 완전히 다른 MZ세대 고용관
긱 워커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자신에게 고유한 업무수행 능력을 구축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독자적인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필요한 네트워크 형성에도 상당한 노력을 투입한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1인 기업가'로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긱 워커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긱 워커의 사회적 교섭력과 업무 능력 강화, 후생 복지 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협동조합 구성을 제안하기도 한다.
4차산업혁명으로 자동화가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자동화 확산과 함께 사람의 역할은 변화를 관리하고 뒷받침하는 쪽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그에 따라 기업 업무는 변화를 일관되게 관리하는 '지속업무'와 변화로부터 파생하는 '일시업무'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가고 있다.
지속업무를 담당하는 변화관리자(Change agent)는 가장 중요한 핵심역량이다. 기업은 이들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재구성될 확률이 높다. 군살은 모두 빠지고 근육질만 남은 탄력적인 조직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반면 일시업무는 외부역량과의 선택적 협력으로 해결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1인 기업가로 진화한 긱 워커가 외부협력의 파트너로 기능할 수 있다.
그동안 기업은 고용 피고용 관계를 바탕으로 업무수행에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조직 안에 통합해 관리해왔다. 그렇게 하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폐쇄적 위계질서는 빠르게 과거의 유물로 전락했고 그 자리를 '개방적 협력 시스템'이 대신한다. 골치만 썩이는 어중간한 존재는 사라져 버릴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유로 제기되어 왔다. 노동계는 집회 등을 통해 줄곧 '비정규직 철폐, 고용안정 쟁취'를 외쳐왔다.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좋은 대기업과 공공 부문 등에서는 당사자인 비정규직이 정규적으로의 전환을 강력히 요구해 오기도 했다.
노동계 요구는 그 나름대로 합리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게 전부가 아닌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긱 워커는 고용안정이 아닌 '고용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전혀 다른 삶의 가치와 양식을 추구하고 있다.
고용안정 아닌 고용으로부터의 해방 추구
사람들 앞에 놓인 선택지가 새로워지고 있다. 핵심 역량으로서 회사형 인간으로 살 수도 있고, 1인 기업가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창업자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도적 불안정이 커진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안정 노동 증가에서 드러나듯이 그 불안정으로 인해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