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죽음으로 유혹하는 맹독성 마약, 펜타닐

2023-08-03 10:43:19 게재
정재훈 전북대 약대 교수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2년 6개월 간 한사람에게 304회에 걸쳐 펜타닐 패치 4826매를 처방한 의사가 구속기소되는 일이 있었다.

미국 상황은 더 나쁘다.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미국에서 아편류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사람은 7만601명이며, 이들 대다수는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지난 5월 테네시주 한 고등학교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두명의 소녀가 사망하고 함께 복용했던 한 소녀가 살해혐의로 기소됐다. 펜타닐이 미국의 고등학생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버지니아주 의회는 펜타닐을 '테러무기'로 규정했으며, 아이오와주는 펜타닐 5g을 제조·판매하면 최대 10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했다.

펜타닐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세계 최강국 미국을 이런 위험에 빠뜨렸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위험으로부터 안전한가?

펜타닐은 1960년 타이레놀로 유명한 얀센사가 처음 개발해 1968년 미국 FDA로부터 진통·마취로 사용승인 받은 의약품이다. 이때 전문가들이 남용의 위험을 경고했으나 기존 진통제보다 탁월한 효과로 의료현장에서 환영받았다.

미국을 위험에 빠뜨린 의료용마약

펜타닐은 대표적 마약 모르핀보다 100배 강하다. 1회 상용량이 모르핀은 10mg인데 반해 펜타닐은 0.1~0.2mg에 불과하다. 또 모르핀은 주사로 투여해야 하지만 펜타닐은 주사는 물론 먹거나 점막에 뿌리거나 피부흡수 등 다양한 경로로 투여할 수 있다.

펜타닐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강한 중독성이다. 모르핀의 100배 이르는 효과 때문에 높은 약물 의존성을 나타낸다. 둘째, 여러 경로로 투여할 수 있고 매우 적은 양으로도 효과가 있어 사탕 등 여러 형태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셋째, 오락목적의 상용량(0.5mg 이하)도 매우 적어 다른 마약에 비해 가격이 싸고 숨기기도 쉬우며 필로폰 코카인 등 다른 마약에 혼합하기도 쉽다. 미국 암시장에서 펜타닐 1회 투여량이 1달러에 판매되고, 혼합마약으로 사용되어 위험도 배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펜타닐은 매우 적은 양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펜타닐에 의한 주요 사망 원인은 호흡마비다. 펜타닐은 치사량이 2mg으로, 단 1g이면 500명을 죽일 수 있다. 술과 함께 복용하면 치사량은 더 낮아진다. 미국 마약단속청(DEA)이 압수한 불법 알약에는 펜타닐이 0.2~5.1mg 함유되어 있었고, 압수한 전체 펜타닐의 42%가 2mg 이상 있었다. 몸에서 펜타닐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2mg보다 적은 양으로도 죽을 수 있다.

펜타닐 위기에 대응해 미국 연방·주정부가 쏟아 내는 대책들을 먼 산의 불로 바라만 봐서는 안된다. 2002년 모스크바의 오페라극장에서 인질극을 벌인 테러리스트를 진압하기 위해 마취가스로 펜타닐 계통의 약물을 사용했다가 170명이 사망한 적도 있다. 펜타닐을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면 나와 이웃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중독자의 과복용뿐만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거나 적개심에 사로잡힌 사람 손에 펜타닐 단 2mg만 놓인다면 누군가는 숨을 멈출 것이다.

중독성 강하고 사용경로 다양

펜타닐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꼭 필요한 약이다. 그러나 불법유통을 철저히 막지 못하면 일상의 안전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도 위협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