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장애놀이터 만든 시민, 국가에 묻다
지난 8월 10일 대전의 공공어린이재활병원 무장애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이 만든 무장애놀이터로는 최초다. 이 놀이터는 약 4만여명의 시민들이 2015년부터 모은 금액(2억3744만420원)으로 조성됐다. 또한 이 놀이터는 대전시 1호 무장애놀이터이기도 하다. 대전시의 장애어린이가 약 2800여명인데, 장애어린이가 놀 수 있는 놀이터는 하나도 없었다. 무장애놀이터의 필요성은 매년 제기되어 왔으나 대전시는 모른 척하며 무시해왔다.
무장애놀이터, 국가보다 시민이 나서
시민이 만든 무장애놀이터 개소는 대전시와 대한민국에 무장애놀이터의 필요성을 알리고 장애어린이의 놀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 역사적 사건이다. 전국에 6만여개의 놀이터가 있지만 장애어린이는 놀이터에 접근조차 하기 어렵다. 대다수 놀이터가 비장애어린이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애어린이의 놀이터 접근 자체를 막고 있다. 놀이터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이용할 수 있는 놀이기구가 거의 없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은 휠체어그네 설치 자체를 막고 있다.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상 휠체어그네는 '어린이놀이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장애어린이의 놀권리를 차별한 사건이다. 2020년 8월, 김영호 국회의원은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는 제안이유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7조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장애 유무나 장애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완전히 참여하여 놀 권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접근할 수 있는 놀이시설을 어린이 놀이터에 함께 설치하여 장애가 있는 어린이와 장애가 없는 어린이가 함께 참여하는 통합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 역시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장애어린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시설 설치에 관한 규정이 없어, 장애 어린이가 이용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 부족한 실정임을 인정했다.
2021년 5월, 이종성 국회의원 등도 비슷한 이유로 동법의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1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어린이 놀권리' 제도화 시급
최근 산업부는 휠체어그네 안전기준을 마련했고 행안부는 휠체어그네의 설치 및 관리를 위해 '어린이놀이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을 개정해 올 안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놀이터에 휠체어그네가 설치되고 무장애놀이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휠체어그네를 설치하지 못하게 한 고리 하나가 풀렸을 뿐이다. 무장애놀이터 조성 등 장애어린이의 놀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 등에 장애어린이가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환경을 조성할 책무를 부여하고 설치비용을 지원하도록 해야한다.
무장애놀이터 조성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들은 직접 조성하는 것으로 답했다. 이는 장애어린이만이 아니라 모든 어린이가 즐거워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답할 차례다. 국회는 이번 회기 내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하고 지방의회는 조례제정으로 장애어린이의 놀권리 보장을 위한 구체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확보 등을 통해 적극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