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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교권'의 자화상

2023-08-18 12:02:55 게재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

무릇 사도(師道)란 무엇인가. 공자는 "난초향은 하룻밤 잠을 깨우고 좋은 스승은 평생의 잠을 깨운다"고 했다. 칸트는 "좋은 스승은 처음에는 판단을, 다음에는 지혜를, 마지막에는 학문을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스승은 그 자체가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자 제자의 인생 길잡이라는 뜻이다. 물론 나쁜 스승도 있다. 영국 교육학자 알렉산더 닐은 "제자를 우습게 보는 스승이 가장 나쁘다"고 했다. 스승의 나쁜 훈육은 제자에게 평생 아픔이 된다는 의미다.

2023년 여름은 교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교사들은 주말마다 거리로 나오고 우리 사회는 안타까워한다. 여름에 교육계는 어수선했다. 수능 킬러문항, 사교육카르텔,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오류, 교권침해 이슈가 이어졌다. 그중 교권이슈가 가장 뜨겁다.

교사들은 학생지도가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하지만 학교·교육청·교육부는 귀를 열지 않았다. 갓 교단에 선 교사는 답답해했다. 대학에선 급변한 인구사회학적 생태계와 학부모 인식 변화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사도의 꿈을 펼칠 학교 현장은 거칠었다. 교사들의 가슴앓이는 한계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등생의 교사 폭행 사건과 초등 여교사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다. 교권침해 사례와 호소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입에 담기도 힘든 '괴물 학부모'의 폭언과 갑질행위를 보면 스승이나 사도라는 말은 폐기된 고어(古語)였다.

교권보호,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사회 문제

정치권은 이를 정치 이슈화해 학생인권조례 논쟁을 벌였다. 사실 진보교육감이 만든 전국 7개 광역시도 교육청의 학생조례는 문제가 많다. 서울시교육청의 조례를 봐도 그렇다. 선생님이 수업 중 잘하는 학생에게 칭찬하거나 격려하면 제5조 '차별금지법' 위배, 잠자는 학생을 수업 시간에 깨우면 제10조 '휴식권' 위배, 휴대전화로 교사 지도를 녹음하고 촬영하면 제13조 '사생활의 자유' 침해로 규정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내용을 잘 몰랐다. 교육청은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그런 사이 교단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례 탓만 해선 안된다. 먼저 교권침해의 본질부터 냉철하게 성찰해야 한다. 인구사회학적 변화에 굼뜬 대학교육, 학부모 세대의 인식 변화, 1인자녀 이기주의 세태 등 사회적 변동 요인이 핵심이다.

현재 초·중·고생 학부모는 대부분 3040세대다. 합계출산율 1.74명으로 처음으로 '1'자로 내려앉은 1984년생(67만4793명)은 현재 39세, 합계 출산율 3.77명으로 '3'자로 떨어진 1974년생(92만2823명)은 49세다.

학부모들은 형제자매가 있지만 그들 자녀는 대부분 외동이다. 초등 1학년인 2016년생(40만6243명)은 출산율이 1.17명, 고1인 2007년생(49만6822명)은 1.25명이다. 합계 출산율이 0.97명으로 '0'명대로 떨어진 2018년생(32만6822명 출생) 이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어떻겠나. '내 아이 이기주의'가 더 극성을 부릴 것이다. 지금도 학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괴물권력'이 돼 교단을 위협하는데 말이다.

학교 현장에선 교장과 교감이 막아줘야 하는데 보신주의만 팽배하고, 교육당국은 인위적인 규제에만 몰두한다. 교권 침해의 본질이나 지속가능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권보호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사회문제다. 교육부가 내놓은 아동학대 무고죄, 정당한 교육활동 면책, 교권침해 생활기록부 기재 같은 규제장치는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한계가 있다. 더구나 교육부는 사도와 스승을 말할 자격도 없다. 교육부 사무관의 '왕의 DNA' 사건은 개인 일탈이기에 앞서 여전히 '완장'을 떼지 않은 교육공무원의 두 얼굴이다.

교육당국은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그런데 이번에도 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교대와 사범대의 교원양성 방식을 선진국처럼 현장 중심으로 바꾸는 커리큘럼 혁신이 필요하다. 겨우 4주 교생실습으로 인구사회학적 변화의 현장과 경험의 응축인 교수법을 체화할 수 있나.

인위적 장치론 한계, 자녀 이기주의 깨야

더 중요한 건 우리 사회의 인식전환이다. 아이를 잘 못 키우는 건 결국 어른과 학부모 책임이다. 1980~90년대 초·중·고를 다닌 3040 학부모들은 촌지와 권위적·비민주적·비인권적 학교문화를 경험한 세대다. 교단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그런 불신을 깨려면 교단의 신뢰회복 노력과 함께 학부모 교육도 필요하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이다. 외동이라 감싸지만 말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선생님들이 스승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학부모가 응원해야 한다. 선생님을 무시하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