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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반물질은 어디로 갔나

2023-08-29 11:39:10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학

1926년 영국에서 유학중이던 오펜하이머가 디랙을 만났을 때는 양자역학이 막 만들어지던 시절이었다. 디랙은 특수상대론과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슈뢰딩거방정식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마침내 '전자의 양자 이론'이란 논문을 1928년에 발표한다. 디랙방정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디랙방정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입자가 음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음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는 어떠한 전자도 안정된 상태에 있을 수 없음을 뜻했다. 예를 들면 1층 높이의 에너지를 갖고 있던 전자가 지하 1층으로, 지하 1층에서 지하 2층으로, 계속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무한히 내려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지하공간이 모두 꽉 차 있어서 전자가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내려가고 싶어도 내려 갈 곳이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었다. 디랙은 음의 에너지 상태를 가득 채운 것이 양성자일 것이란 추측을 실은 논문을 1930년 발표한다.

이 논문을 읽은 오펜하이머는 음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가 양성자일 수 없음을 밝히는 몇가지 논거를 제시하며, 양의 전기를 띈 새로운 입자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펜하이머의 해석을 받아들인 디랙은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positron)'의 존재를 예측했다. 실제로 양전자는 1932년 앤더슨 팀의 안개상자 실험을 통해 발견된다. 반입자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디랙방정식과 반물질의 존재방식

디랙방정식은 꼭 전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식이 아니었다. 양성자 역시 디랙방정식으로 논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반양성자가 존재할 것이라 믿어졌다.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디랙은 기념연설에서 입자와 반입자의 완벽한 대칭성이 존재한다면 분명 '반양성자와 양전자'로 이루어진 반물질도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우리의 지구가 오로지 전자와 양성자로만 구성된 것은 일종의 우연이란 주장을 펼쳤다. 더 나아가 우주 어딘가에 반물질로 이루어진 별들이 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구별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곁들였다.

이론적으로만 예측됐던 반양성자의 존재가 실제로 실험에 의해 입증된 것은 1955년의 일이다. 양성자와 양성자를 충분한 에너지로 충돌시키면 반양성자가 생성되었던 것이다. 반양성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곧 양전자와 결합한 반수소(antihydrogen)도 존재할 수 있음을 뜻했다. 반수소가 있다면 반헬륨(anti-helium)도 있을 것이고 더 무거운 반리튬(anti-litium)도 존재할 것이다. 실제로 반헬륨은 중이온핵 충돌실험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렇다면 디랙의 말처럼 우주 어딘가에는 반수소가 뭉쳐 만들어진 별이 핵융합을 하면서 태양처럼 빛날 수도 있다. 상상력을 더해보면 반물질로 된 별들이 모여 은하를 만들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은하들 중 절반이 반물질로 만들어진 은하일 수도 있다.

심하게 얘기하면 달이 100% 반물질로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달이 반물질 덩어리였다면 1969년 인간이 달에 착륙하자마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반물질로 이루어진 별이 돌아다니다가 보통의 별과 부딪치면 초신성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폭발이 발생할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관측은 보고된 바 없다. 그래서 최소한 우리 은하 안에 반물질로 된 별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같은 생각을 확장해보면 반물질로 이루어진 은하 역시 존재하기 힘들다.

빅뱅과 반물질 이론은 양립할 수 있나

반물질로 된 별과 은하가 없다면 빅뱅이론에는 큰 문제가 하나 생긴다. 현재의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커다란 에너지 덩어리에서 시작했다. 이 불덩어리가 식으면서 물질들이 생겨났는데 이때 입자와 반입자는 반드시 쌍으로 똑같이 생겨나야만 한다. 그렇다면 전자가 만들어진 만큼 양전자가 나왔을 것이고 양성자가 만들어진 만큼 반양성자가 생겨났을 것이다.

결국 수소원자가 만들어진 만큼 반수소도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우주를 보면 반물질로 된 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반물질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문제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속 시원한 해답은 없다.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 과연 우리 시대 안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