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민주당 '진짜 혁신의 길'
윤석열정권의 국민분열적 행보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현 주소다. 윤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최근 국민의힘 연찬회 발언에서도 드러내보였듯이, 윤석열정권은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세워 작금의 한국 정치와 사회에 다시금 소모적인 이념 균열을 갈등으로 동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출범 이후 일관하는 전임정권 탓도 그러한 선상에 놓여 있다. 국방부가 추진하면서 정치사회적 공방을 일으킨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흉상 철거와 백선엽 흉상 설치 시도 문제 등도 그러하다.
한일관계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엄정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 우파-보수 전략의 고유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미중 무역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제정세의 군사화가 중·장기적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때 기본적으로 우파 보수의 주도 하에 미국 의존적 대외정책 성향이 강한 한국은 북-중-러 동맹에 대항해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선택을 취하는 게 가장 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이 길을 선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이미 유럽 국가들도 반중 노선을 견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중국의 위상과 세계 경제대국들의 중국과의 연계성 등을 고려할 때, 또 세계정치경제 질서에서의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와 이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항 헤게모니 블럭(브릭스) 구축의 노력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다.
시대 읽는 눈 부재하거나, 의지 없거나
그런데도 윤석열정권이 국내외의 논란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원전 오염수 방류까지 수용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코자 하는 것은 대외정책에 있어서의 한국 우파-보수의 미국과 일본 친화적인 이념성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미국이 어려울 때 편을 들어주면 북-중-러와 미-EU-일 사이에서 균형자적 태도(포지셔닝)를 취하는 것보다 실익이 더 클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했을 수 있다.
이러한 이념 성향과 전략적 인지 및 태도는 단지 (종미-종일) 반민족주의나 세계정세의 작동 원리와 변화에 대한 무지함만으로 몰아세워 비난만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비난이 가능하다해도 그것이 윤석열정권에 수용되어 대외정책의 실제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윤석열정권에게는 자기 나름의 합리적 이유와 논리가 있다. 따라서 윤석열정권의 대외정책을 개선하는 데 영향을 발휘하려면 그 상이 명확한 대안 이념과 정책을 제시해야 하며, 그것에 대한 국민 다수의 강한 지지가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국민분열적 행보, 특히 반공주의 동원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일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4차산업혁명 기후위기를 비롯해 앞서 언급한 바와 관련한 국제정세의 군사화 등과 같이 이미 진행 중인 격동의 세계를 '우선 읽는 눈의 부재' 혹은 '읽고자 하는 의지의 부재'다. 그래서 상이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이 점에서 오히려 윤석열정권보다 퇴행적이다. 윤석열정권은 선택했고 결정했으며 실행하고 있다.
정치하는 이들이 쉽게 잊는 게 있다. 누구랑 싸우는지는 아는데 왜 싸우는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즉 싸움의 이유를 잊는다. 그런데 민주당은 싸움의 이유는 물론 무엇과 싸워야하는지도 잊은 것 같다. 알려는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윤석열정권에 맞서는 데 머물러있다.
무엇과 왜 싸워야 하는지 잊은 민주당
그럴 것이 아니라 비켜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윤석열정권 탓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격동의 세계를 다뤄야 한다. 그 세계에서 '호민정신'을 실현할 의제와 담론과 정책을 만들고 제시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미래지향적-국민통합적 명분을 세우는 데 열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 재정도 그것에 쏟아야 한다. 그게 윤석열정권의 이념정치를 넘어설 '진짜 혁신의 길'이다.
그런데 명분도 마련치 않고 당내 의사결정구조와 공천권을 둘러싼 규칙만 갖고 시비를 벌인다. 정치학자나 전문가들에게 던지는 질문도 내내 그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 상황을 우선 벗어나야만 민주당의 살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