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분산형 시대의 에너지 패러다임

2023-08-30 10:57:24 게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한국의 인프라 집중에 따른 문제점은 '서울공화국'이란 말로 대변된다. 나무위키에는 '대한민국의 수도권 과밀화는 흔히 서울공화국이라고 부르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대부분의 역량이 서울특별시(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을 나타낸 말'이라고 적혀있다. 역대 정부는 온갖 정책 수단과 역량을 집중해 이 현상을 해소하려 노력했다.

역대 정부 모두 실패한 수도권 분산 정책

필자의 전 직장은 1980년 서울 강북의 한복판에서 설립되어, 신흥 개발지역이던 서초동 산자락으로 이전했다. 이후 수도권 과밀화 억제 시책에 따라 용인 수지로 세 번째 이전했다. 세번째 이전을 위해 1994년부터 시작된 신사옥은 참 힘든 과정을 거쳐 1999년 완공됐다. 이 공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필자는 입주 첫날 일부 동료들로부터 '이런 시골에 집을 짓자고 한 자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 그곳에서 서울 강남 한복판으로 27분 만에 도착하는 지하철이 개통됐지만 2019년에는 그 건물을 팔고 또 새집을 지어 지방으로 이전했다. 입주한 지 20년째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은 특별시 자치구 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 특례시 시 군 읍 면 동 리 통 반 등 기억하기도 어려운 다양한 명칭과 위계를 갖고 있다. 워낙 많은 곳에 특별이라는 말을 붙여 무엇이 특별하고 무엇이 일반적인지 구분조차 힘들다.

그런데 오랜만에 좀 기대되는 진짜 특별한 지역이 생길 것 같아 희망이 솟아오른다. 6월에 공포된 '분산에너지특별법'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화지역으로 지정된 지역 내의 발전사업자는 생산한 전력을 한전을 거치지 않고도 지역 내 수요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다. 아직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뒤따라야 하겠으나 그 특별한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만 적용되는 요금제를 만들 수도 있다.

지역 내 거래를 통해 절감된 사회적 비용, 송전비용 등이 차감된 저렴한 요금은 데이터센터 등 서울공화국에 집중된 전력 다소비 시설을 흡수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탄소 발생을 유발했던 사람이나 상품의 장거리 이동을 감소하게 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분산에너지특별법'에 거는 기대

탄소중립을 위해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국가들에게 보이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권력은 물론 경제권력이 지방으로 분산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인 것 같다. 한국과 같이 단일 전력망으로 연결된 국가에서 전력(Electric Power)은 정치권력(Political Power)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정권의 색체와 관계없이 역대 정부가 전력 가격의 결정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것은 모두가 아는 바 아닌가?

저탄소에너지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이제 전력은 멀리 지방에서 생산해 온갖 사회적 환경적 비용을 치르면서 서울공화국으로 보내는 남전북송(南電北送)의 패러다임을 벗어나게 된다. 분산화된 정치권력과 같이 전력도 생산된 곳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방향으로 가게 된다. 필자가 이 특별한 법이 가져올 산업배치의 분산, 경제력의 분산, 전력가격 결정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정말로 특별한 지역의 출현을 기대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