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단기적 경기부양보다 장기적 산업경쟁력 육성

2023-09-07 16:09:52 게재
최필수 세종대 부교수 국제학부

중국의 경기가 나쁘다. 특히 부동산발 부채위기가 입에 오르면서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현상은 일본과 매우 다르다.

일본정부는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가 급등하자 기업계의 불만을 잠재우고 수출에서 투자로 성장동력을 전환하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폈다. 그리고 투자활성화를 위해 은행들의 토지담보 대출제한을 없애고 마이너스 금리 채권을 장려했다. 그 결과 투자를 넘어 투기광풍이 불었고 부동산과 자산가격이 폭등했다. 도쿄 황궁터 시가총액이 캐나다 전체 부동산 가치보다 높았다고 하니 그 열기를 알만하다.

그러나 이 거품은 결국 1989년 크리스마스 중앙은행의 금리인상과 함께 꺼지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은 투자열기를 상쇄하고도 남는 기나긴 투자부진을 겪는다. 즉 일본 위기의 1차적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거시정책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은 어떠한가? 언뜻 보면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모양새로 일본과 닮아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과 역할이 매우 다르다. 일본정부가 거품 붕괴 전 투자붐을 조장했던 것과 달리 시진핑 지도부는 취임 후 그동안 누적된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중국에서 부동산 거품의 형성은 2009년 대규모 경기부양으로 정점을 찍었던 후진타오 시기에 주로 벌어진 일이다. 이 거품은 단순히 부동산업계의 이윤뿐 아니라 토지사용권 판매수익을 챙기던 지방정부 재정과도 관계가 깊어 일시에 근절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도시인구 증가속도보다 도시면적 증가속도가 더 빠른 중국식 도시확장(urban sprawl)이라는 고질병은 시진핑 1기에도 계속됐다.

시진핑 지도부, 부동산 거품 빼는 데 주력

그런데 시진핑이 권력을 굳힌 다음부터 부동산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집은 거주의 공간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했고, '공동부유'의 일환으로 부동산 보유세를 징수하겠다고 예고했으며 부동산기업에 대한 대출을 옥죄었다. 2년 전 헝다 사태 때나 최근 비구이위안 사태 때도 이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증이 든다. 중국정부가 위기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이니 양적완화니 하는 말은 통 없다. 그러고 보면 중국은 코로나 때부터 재난지원금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다른 나라들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 나홀로 디플레이션 걱정을 하고 있다. 이는 적극적인, 심지어 과도한 경기부양을 펼쳤던 후진타오 때와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기부양 여지는 매우 크다. 사회보장지출의 GDP 대비 비중은 7%에 불과해 30%를 넘나드는 선진국에 비할 바가 못된다. 사회보장이 약하다 보니 인민들은 부지런히 저축을 하게 되는데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의 비중은 30%를 넘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즉 인색한 정부지출이 인색한 민간소비로 이어지는 악순환인 것이다.

그럼 중국은 재정을 어디에 쓰고 있는 것일까? 시진핑 지도부는 단기적인 경기부양보다 장기적인 산업경쟁력 육성에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부동산 부문의 부실은 국유은행이 감당할 수 있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에게 부동산 거품을 물려받긴 했지만 초우량 은행들도 물려받았다. 또 인구가 정점을 찍긴 했지만 도시화율이 아직 65%에 불과해 근본적인 주택수요는 견실하다. 더구나 미국처럼 부채가 파생상품으로 엮여있지도 않고 대외부채 비중이 낮아 외환위기 가능성은 없다. 결국 국지적인 파국은 있을지라도 총체적인 위기는 막을 것이다.

정작 중국이 우려하는 일본의 경험은 거품붕괴가 아니라 산업경쟁력 상실이다. 1980년대 세계를 석권하던 일본의 기업들은 미국발 정보통신 혁명과 한국 중국 등 신흥 제조강자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힘을 잃었다. 일본 장기불황의 직접적 원인은 국가의 거시정책이었지만 더 심층적 원인은 산업경쟁력 소실이다.

산업경쟁력 확보에 아낌없이 투자

실제 경기부양이나 재난지원금에 인색한 중국정부는 산업정책에는 아낌없이 자금을 쏟아붓는다. 반도체에 대해서는 여러차례에 걸쳐 수천억위안의 기금을 형성했다. 미국의 견제 속에 반도체 자립이 늦어지고 있지만 중국은 끝을 볼 태세다. 5G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이른바 블루칩 부문에 빈번히 등장하는 수천억위안의 투자들은 일일이 집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은 민생을 희생하는 산업정책을 통해 원하는 산업경쟁력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중국은 선례가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최필수 세종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