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중소기업 ESG공시, 시행착오를 없애라
그간 우리나라 지속가능성 공시는 IR에 필요한 정보공시라기보다 기업의 성과를 홍보하는 PR자료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한 비판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기업의 책임만은 아니다. 복잡하게 난립되어 있는 공시기준, 깜깜이 평가방법, 수많은 이니셔티브와 규제들, 근본도 없는 ESG어워드와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때마침 최근 몇년간 ESG 공시기준은 유럽의 지속가능성공시표준(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ESRS)을 비롯,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상장기업 기후공시 의무화 규정,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 Board, ISSB)에서 발표한 IFRS S1/S2로 재편됨으로써 그나마 기업들이 지켜야하는 기준은 보다 명확해졌다.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하나 우리 대기업들은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하지만 ESG공시가 본인 기업만 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공급망 ESG정보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 기업들에겐 더 큰 도전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들이 배출량 정보를 공시해야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금융배출량(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 PCAF)을 계산해 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급망실사법에 따라 중소기업들이 환경과 인권관련 ESG정보도 공시해야 한다.
ESG공시도 원소스 멀티유즈 방식으로
이 지점에서 그간 ESG공시과정에서 대기업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중소기업이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정부와 대기업 및 유관기관 등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일례로 제조업을 하는 A사는 무려 4개의 원청사가 요구하는 ESG정보에 대응하느라 적잖은 업무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요구하는 정보 내용이나 양식이 서로 다르다보니 납품하는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마치 수많은 공시기준 중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몰랐던 대기업들이 겪은 고통을 중소기업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SG공시 및 공급망 관리가 의무화되면서 A사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한 중소기업들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방지하기 위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단 한번의 공시로 모든 이해관계자가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져다 쓰는 방식인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OSMU)는 그 중에서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제도의 경우 기업들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재무정보를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하면 이해관계자(투자자, 협력업체, 금융기관, 신용평가회사, 재무데이터 제공업체 등)들은 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 시스템을 통해 수집한다. 즉 정보제공자는 인정된 기준(IFRS 또는 K-GAAP)에 따라 한번만 공시하면 된다.
앞으로 중소기업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거래하고 있는 원청사 금융기관 수출업체 등 개별 이해관계자가 중소기업들에게 그들의 입맛에 맞는 ESG정보를 요청하는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3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업종별로 통일된 공시기준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현재 ESG공시기준이 통합되고 있고, 업종별로도 중요하게 공시해야 하는 항목들은 정립되어 있다. RBA(전자, 자동차, 유통, 장난감), RMI(광물공급망), PSCI(제약 및 의료공급망), TFS(화학업체 공급망), IFBA(식음료공급망), GESI(통신서비스 공급망)등 업종별 공급망 관리지침 등은 좋은 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방향설정 중요
둘째, 업종별 대기업들과 협력업체들 간 상생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ESG공시기준과 업종별 공급망 관리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자사의 편의에 맞는 데이터를 고집한다면 중소기업들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각 산업별 협회 등이 나서서 지혜를 모은다면 가능한 일이다.
셋째, 공시 플랫폼의 경우에는 글로벌 트렌드에 따르는 것이 좋다. 국제사회의 큰 흐름에 맞도록 ESG정보를 공시하는 플랫폼 개발 및 선택도 글로벌을 지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대·중소기업들이 동반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 정확한 진단과 방향설정이 중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