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아세안 정상회의로 지역협의체 모범사례 부각

2023-09-15 10:39:29 게재

미얀마 위기해소엔 역부족 드러내 … 국제사회서 아세안 위상과 입지 한층 강화

정해문 전 태국 대사

인도네시아는 56년 아세안 발전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 올해 다섯번째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했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으며 동시에 지구촌의 기대 수준을 한층 높였다. 이런 기대치는 인도네시아의 국제적 위상과 비중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상 의장국은 재임 중 상.하반기 각 1회씩 두 번 정상회의를 주최한다. 상반기 정상회의는 아세안 자체 회의이며, 하반기는 아세안 자체 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 등 역외 대화상대국들을 초대하여 개최하는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로 구분된다. 인도네시아는 상반기 아세안 자체 제42차 정상회의를 5월 10일~11일 라부안 바조에서 개최하였으며, 하반기 제43차 정상회의는 9월 5일~7일 수도 자카르타에서 개최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지난 1여년간 의장국 성과를 집약하여 국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의장국 수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아세안의 위상과 존재 가치를 크게 제고시킨 만큼 작년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와 더불어 국민적 자긍심을 고양시키고 아세안 내 지도력을 더 강화할 수 있으며 국제적 평판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인도-태평양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인.태전략을 펼치는 모든 국가는 인.태 지역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는 아세안과의 협력 심화를 전략의 핵심에 두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아세안은 그 자신의 인.태 전략인 '인도 태평양에 대한 아세안 의 관점(AOIP)'의 주류화에 주력하면서 내실을 다지고 있다.

13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제20차 아세안 공군참모총장회의에서 미얀마 공군총장 흐툰 아웅(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참석한 가운데 15일까지 열린다. 이 회의에는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 공군참모총장이 참석했다고 미얀마 군사정보팀은 밝혔다. 아세안은 미얀마 군부에 반군과 대화 재개를 촉구하면서도, 제재를 가하기 보다는 다양한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렇다고 하여 인도네시아의 의장국 활동이 장미 빛 일색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얀마 사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기대 속에 의장국 활동을 개시한 인도네시아는 난마처럼 얽혀있는 미얀마 위기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노정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전례 없는 성과를 이루었고 국제사회에서 아세안의 위상과 입지를 한층 강화하고 아세안이 지구촌 지역협력체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는데 크게 기여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2차전지 핵심 공급망 파트너 인도네시아 =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무대는 바로 우리 국익 신장의 마당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아세안 대화 상대국에는 안보리 상임 이사국 4개국, 한국, 일본, 인도 등 현재 경제 대국이거나 잠재적 경제 강국, EU,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가치외교 신봉 민주주의 종주국 등 어느 면에서 보나 중요한 나라들이 포진하고 있다.

우리는 아세안 회원국 지도자뿐만 아니라 이들 아세안 대화 상대국의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10분 활용하여 아세안과의 협력은 물론 개별 국가들과의 협력 외연을 넓히고 확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일회성이 아니라 이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아세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아세안을 진정한 이웃으로 삼아 더불어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견지하면서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크게 부각된 논점에 대해 한국과 아세안이 어떻게 협력해 나가면 상호 윈윈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먼저 인도네시아는 정상회의 주제를 '아세안의 중요성 : 성장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아세안이 세계 성장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아세안 전역에 걸쳐 전폭적인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 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지도자 성명, 아세안 지도자 선언 및 자카르타 선언 등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우리는 중국을 대체할 거대시장으로서, 핵심광물의 안정적 공급망으로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을 비롯한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을 더 강화해나가야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중국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14국을 '알타시아(alternative+Asia)'라는 키워드로 제시했다. 알타시아의 생산가능 인구(15~64)는 14억명으로 9억5000만명의 중국을 뛰어넘는다.

인도네시아는 공급망과 경제안보 측면에서 포괄적인 협력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2차 전지 분야 핵심 공급망 파트너로서 인도네시아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니켈은 배터리 제조에 들어가는 필수 광물로, 인도네시아는 세계 니켈 매장량 1위 국가다.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시티 등 미래 산업 분야와 방산, 녹색 디지털 분야에서 선도적 협력은 양국 관계의 미래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 아세안 인태전략은 '같은 지향점' = 두 번째로 인도네시아는 이번 정상회의를 아세안의 인도-태평양 전략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을 본격 추진하는 계기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대화 상대국들과의 협력에 주안점을 두었다. 9월 5일 채택된 'AOIP 협력에 대한 제24차 한-아세안 정상 공동성명'과 인도네시아 주도로 이번 동아시아 정상회의와 병행 개최된 아세안-인도.태평양 포럼이 이를 말해준다.

인도네시아측은 아세안-인도.태평양 포럼의 성공을 위해 엄청난 내공을 들였다. 동 포럼을 이번 정상회의의 대표 사업(flagship project)으로 선정하고 이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들을 초청하여 수준 높은 회의 결과물을 도출함으로서 그 동력을 이어가도록 준비했다.

또한, 조코위 대통령이 동 포럼의 개막 연설을 할 정도로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최초의 인.태포럼이라는 상징성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은 AOIP의 4개 우선 순위 분야(해양협력, 연계성, 유엔 SDGs 2030 및 경제협력 및 기타 가능한 협력 분야) 협력을 주류화하기로 이미 합의하였으며, 앞으로 대화 상대국을 포함한 역외 파트너들과 이 분야 협력 증진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와 아세안의 인.태전략은 "정확히 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강조한 만큼, 양측은 앞으로 인.태전략 이행에 보조를 맞추어 자유, 평화, 번영의 인.태시대를 함께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관계 격상시킬 '한-아세안 연대구상' = 세번째로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아세안과의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거시적 차원의 협력이 우리의 인.태전략에 부합하며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책임 외교를 다하는 것이란 점에 광범위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다.

한-아세안 연대구상은 인.태전략 3대 비전과 연계한 8개 중점 추진 과제를 선정하였으며, 정치, 안보, 전략, 미래 분야까지 포함하는 중장기적 포괄적 전략 구상으로서 금후 아세안과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염두에 둔 중장기 외교적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아세안측은 KASI와 그 후속 이행 조치들을 환영하고 이는 성장의 중심으로서 아세안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네번째로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채택된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 3국은 아세안 및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인도.태평양 국가에 대한 정책 조율을 강화하기로 합의함으로서 인.태 지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외교지평을 열었다고 본다. 3국은 아세안 중심성과 통합 지지를 재확인하고 AOIP의 역동적 이행과 주류화를 지지하기 위해 아세안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아세안은 우리의 인.태전략의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만큼 전략적 소통을 부단히 이어가야 할 것이다.

◆한-아세안 잠재적 공동이익 매우 커 = 다섯째로 이번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은 중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세계 평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동북아의 안보와 동남아의 안보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 점이 바로 지난 7월 13일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아세안 외교장관 명의 신속한 규탄 성명 발표로 이어졌음을 말해 준다. 우리는 계속해서 아세안이 주도하는 여러 지역 안보구도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아세안 지역은 젊은 인구에 역동적 경제 성장, 정치적 응집력으로 활력이 넘친다. 시대를 앞서 보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산실이기도 하다. 한-아세안 양측의 공동 이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며 잠재적 공동 이익은 상상력을 능가하는 지역이다. 우리는 이를 간파하고 아세안과 상생 번영의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한-아세안 관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승격을 앞두고 아세안과의 협력을 어떻게 확대하고 심화시켜 나갈지 숱한 지적인 고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