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내란은 구국이고 촛불은 사기라니
우리 현대사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다 보면 설명하기 쉽지 않은 한 시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부터 1981년 2월 25일 전두환 12대 대통령 임기 시작 이전까지 488일간이다. 복잡한 권력관계 속에 많은 사건과 국면이 뒤범벅된 이 시기를 어떻게 부를지부터가 우선 마뜩찮다.
법적으로 따지면 유신헌법 하에 있었기 때문에 유신체제기다. 이 시기 정부 수반이었던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1979.10.27.~12.6.)과 대통령(1979.12.6.~1980.8.16.), 박충훈 대통령권한대행(1980.8.16.~8.27.), 전두환 대통령(11대, 1980.8.27.~1981.2.24.)이 모두 유신헌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임명 또는 선출됐다.
하지만 이 시기를 유신시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4공화국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유신하면 '박정희 1인 영구집권체제'였고 그것은 10.26사태로 사실상 끝났다는 데 다들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규하정권기'라고 부르려고 하지도 않는다. 최규하씨가 그 대부분의 시기에 대통령 및 대통령권한대행 자리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음을 모두가 다 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5.18민주화운동이 최규하정권 하에서 일어났다고 하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최규하정권기와 신군부내란기
그래서 '신군부정변기'라는 제안이 나왔다. 최근 학계 전문가들의 비공개 논의 자리에서다. 12.12, 5.18, 국보위 설치, 최규하 대통령 하야 등으로 이어지는 이 시기의 정국상황을 잘 반영하는 명명이긴 하지만 이 또한 반론에 부딪혔다. 모든 역사적 책임을 신군부에 돌리고 최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정변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구체적인 용어로 바꾸고 반론의 내용을 괄호 안에 병기해서 반영한 '신군부쿠데타기(최규하정권기)'가 잠정안으로 채택됐다.
논의를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은 '신군부내란기'였다. 12.12~5.18사건에 대한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보자. 12.12는 군사반란이고 신군부의 5.18 대응은 내란이며 그 종결 시점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1981년 1월 24월이라고 판단한다. 재판부는 5.18시민항쟁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무장투쟁을 간접적으로 인정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반란수괴 내란수괴 등의 죄목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내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에서 가장 무거운 죄로 취급했다. 옛날식으로 대역죄다. 현행 형법에도 최고형으로 다스리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나 공소시효 적용에서 예외로 규정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내란 사건은 주로 학생시위 탄압이나 정적 제거 등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사례가 대부분이다. 6.3항쟁, 민청학련사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등 많은 사건에서 내란죄를 적용하려다 실패하거나 뒷날 재심에서 무죄가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5.18항쟁 관련자를 내란죄로 단죄했던 신군부 세력이 뒷날 거꾸로 내란죄로 처벌받은 기막힌 반전도 있었다. 정부 수립 후 명멸한 수많은 내란 사건 중에 성공한 진짜 '내란 수괴'가 처벌받은 것은 전씨가 유일하다.
최근 국방부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신원식 의원이 "12.12는 (전두환씨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과거에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인민민주주의로 걸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을 파멸시킨 2016년 촛불은 거짓이다"라는 말도 했다. '서울의 봄'과 5.18광주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 등을 내란, 군을 동원해 권력을 탈취한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 등을 구국행위로 보는 것은 뉴라이트도 뛰어넘는 반동적 역사관이다.
성공한 내란수괴 처벌, 전씨가 유일
아무리 여야 간, 이념진영 간 대립이 극심하다 해도 정치 지도자나 국정을 책임질 인사가 극단세력의 무책임한 주장에 편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파문이 커지자 신 후보자는 '방송 편집에 의한 오해' '공인이 되기 전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앞으로는 정부의 공식 견해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 신 후보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국가적 국민적 합의로 정립된 역사를 '구국'을 빙자해 전복하려 드는 것이 바로 내란적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