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통합 힘 키워 집단대응·균형외교로

2023-09-21 10:35:08 게재

이선진 전 인도네시아대사 신간

중국과 공존하는 아세안의 지혜

한국 외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외부 요인은 무엇일까. 현대에 들어서는 미국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중국이다. 1990년대초 냉전 붕괴로 한중관계가 복원돼 30여년이 흐른 지금 중국과 미국의 경쟁 격화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란 화두를 풀기 위해 아세안의 집단외교를 깊이 들여다본 책 '중국과 공존하는 아세안의 지혜'(박영사·2만원)가 출간됐다.

저자 이선진 주인도네시아 전 대사는 33년 경력의 외교관 출신이다. 2002년부터 아세안과 인연을 맺었고, 2008년 퇴임 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한·중·일·아세안의 주요 연구소들을 섭렵하며 연구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중국 동남부와 아세안 국가들을 발로 누비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책은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의 변신을 타임라인으로 삼았다. 중국이 1990년대 고난기, 2000년대 고도 성장기, 2010년대 대국의 꿈을 키우던 시기를 거쳐 현재의 미중 경쟁 시대에 이르는 동안 이념과 정치체제, 국가크기, 경제수준, 문화가 서로 다른 아세안 10개 회원국이 어떤 전략으로 대처해 왔는지를 다뤘다.

이선진 전 대사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세안 회원국들은 개별 외교를 전개하면서도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처럼 공동대응이라는 집단외교를 행하고 있다"면서 "한국이 아세안 외교의 두 개 모자 중 개별외교만으로 아세안을 이해하려 하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매년 열리는 아세안지역포럼(ARF)은 회의 막판 의장성명을 발표하는 데, 성명에 들어갈 북한핵 관련 조항을 두고 남북한이 외교전을 펼치고, 회원국 대부분은 개별 접촉에선 한국을 지지하지만 정작 최종 문안에는 남북한에 균형을 이룬 입장이 채택된다.

이런 태도는 중국에 대한 대응에서 더 확실하고 일관돼 있다.

책은 중국을 향한 아세안 전략의 핵심을 세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지난 20여년 동안 기울인 지역통합 노력으로 이룬 경제력을 기초로 중국이나 미국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정치·안보의 토대를 이뤘다. 경제력→안보력의 전략으로 남중국해 등 대중 갈등 사안에선 공동 대응하지만, ARF, 아세안+3 등 다자 틀로 중국과 공존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균형외교 전략이다. 미중 경쟁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다 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의 단합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아울러 동남아 지역이 특정 국가의 배타적 세력권 아래 위치하도록 허용치 않는 '아세안 중심성'을 확고히 하고 있음을 이 책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김상범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