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아시아', 경제모델 재구축

2023-09-25 10:49:33 게재

이코노미스트지 "역내 무역과 자본흐름 크게 늘어" … 미국 등 서구 경제적 영향력은 감소

'팩토리 아시아'(세계의 공장 아시아)라는 표현은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경제적 성취 중 하나를 설명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과 한국 대만,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이 상품제조의 중심지가 돼 전세계, 특히 부유한 서구 국가들에 수출했다. 수백만명의 아시아인이 제품을 만들며 가난에서 탈출했고 많은 이들이 부유해졌다.

이제 아시아 지역의 경제모델이 다시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아시아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990년에는 막대한 양의 상품이 서방으로 유입되면서 아시아 무역의 46%만이 아시아 대륙 내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2021년 이 수치가 58%에 달해 유럽 수준인 69%에 근접했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아시아 역내무역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흐름도 증가해 각국을 더욱 긴밀하게 묶고 있다. 아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미래를 재편할 새로운 아시아 상업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정교한 공급망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중국도 이에 발맞춰 성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완제품 일부가 될 중간재가 국경을 넘어 더 많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이어졌다. 금융허브인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아시아 투자자들은 현재 역내 FDI의 59%를 차지한다. 2010년의 48%에서 크게 증가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한국의 경우 아시아로부터의 FDI 비중이 26%에서 61%로 대폭 늘었다.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경을 넘나드는 국제적 은행업무도 아시아 비중이 높아졌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아시아 지역 해외대출의 약 1/3을 아시아 은행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구 금융기관들의 후퇴를 틈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중국 대형 국영은행들이 이를 주도했다. 중국공상은행의 해외대출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2배 이상 늘어 2030억달러에 달했다. 일본의 메가뱅크들도 자국 내 수익성 악화를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진출했다. 싱가포르의 유나이티드오버시즈은행과 화교은행도 마찬가지다.

서방국가들의 존재감도 줄어들었다.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가 동남아시아 연구자와 기업인, 정책입안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32%가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이라고 대답했지만 '미국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강국'이라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통한 중국의 대아시아 국가 투자가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공식적인 지원과 정부 주도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통합되는 아시아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 공장에 의존하는 아태지역 기업들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을 완전히 떠날 것으로 예상하는 경영자는 거의 없기 때문에 2개의 아시아 공급망이 필요해 투자도 2배 늘어날 수 있다.

무역협상이 이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2020년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아시아 지역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미국은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포기함에 따라 아시아 수출업체들이 미국시장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모신용기업 'ADM캐피털'의 사비타 프라카쉬는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운송 및 물류 부문에서 아시아 내 투자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안정적인 수입을 찾는 투자자와 자금조달을 원하는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일이 사모신용기업의 주업무"라며 "그동안 아시아에서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었고 앞으로도 더욱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사모신용시장 규모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50% 늘어 800억달러에 달한다. 또 싱가포르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관리하는 국부펀드인 GIC는 새로운 공급망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아시아의 저축과 인구구조 변화도 경제통합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중국과 홍콩 일본 싱가포르 한국 대만은 세계 최대 규모 해외투자자 대열에 올라섰다. 이들 국가는 최근 구축된 무역연결망에 따라 아시아 다른 지역으로 엄청난 양의 자본을 수출하고 있다. 2011년 이들 국가가 방글라데시와 캄보디아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 투자한 금액은 3290억달러(현재가치 기준)였으나 10년 뒤인 2021년엔 6980억달러로 증가했다.

프랑스계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라구 나라인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여전히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도시화에 많은 투자자본이 쏠린다"라고 말했다. 대도시에는 많은 인프라 투자뿐 아니라 도시생활에 적합한 새로운 기업도 필요하다. 나라인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수합병(M&A) 활동이 유럽과 북미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자국 내 저금리와 저성장에 직면한 일본 은행들이 M&A 거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스미토모 미쓰이 파이낸셜그룹과 미쓰비시UFJ 파이낸셜그룹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 금융사를 인수했다.

아시아인, 글로벌 소비층에 대거 편입

한편 아시아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시장으로서의 매력이 더욱 커졌다. 유럽의 경우 소비재의 70% 정도가 역내에서 수입되는 반면, 아시아 국가들의 역내 수입은 44%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리서치기업 '월드데이터랩'에 따르면 2017년 달러 기준 하루 12달러 이상을 소비(구매력 평가)하는 '글로벌 소비층'은 내년 1억3100만명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약 9100만명이 아시아에 거주하는 사람일 것으로 예상된다.

수십년에 걸친 중국의 소득 증가세가 둔화된다고 해도 아시아 다른 국가들이 그 공백을 메울 태세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등 아세안 지역블록의 5대 경제 대국은 2023~2028년 수입이 연간 5.7%씩 증가, 전세계 어느 지역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통합의 경제적 의미는 매우 흥미롭다. 오늘날 아시아 전역의 소득격차는 매우 커서 구매력을 고려한 1인당 GDP는 인도가 8000달러, 일본이 4만9000달러다. 유럽연합(EU)이 동유럽 국가들이 서유럽 국가들의 소득을 따라잡는 데 도움이 된 것처럼 아시아의 통합도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유하고 고령화된 아시아 국가들의 저축은 가난하고 젊은 국가들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건전한 수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번영을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무역이 늘면 소비자물가가 낮아지고, 투자가 증가하면 자본비용이 낮아진다"고 전했다.

긴밀한 상업적 연계는 아시아 경제의 각종 사이클을 동조화시키고 있다. 2021년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 국경 간 거래에서 달러 비중이 여전히 우세하고 아시아 투자자들이 서구 상장시장을 지속적으로 선호하지만, 아시아 각국의 경제는 미국보다 중국에 더 노출돼 있다. 최근 여러달 동안 중국의 무역부진으로 한국과 대만 수출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간재뿐 아니라 소비용 완제품의 무역이 증가한다는 것은 아시아 대륙의 통화와 통화정책 결정이 점점 더 함께 움직일 것임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는 정치적 파급효과도 가져올 전망이다. 아시아 안보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유지되겠지만 경제적 중요성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아시아 기업인과 정책 입안자들은 멀리 떨어진 국가나 고객보다 이웃국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수용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에선 여전히 공장이 건설되고 소비가 늘어나고 프로젝트 자금조달을 절실히 원한다. 아시아 고령층 저축자들의 자금은 풍부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통합의 정점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아시아 상거래의 시대는 서구 중심이 아닌 역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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