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뒷걸음치는 한국경제의 초현실
작년 초부터 비상이 걸렸던 무역부문은 일단 고비를 넘기고 안정국면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9월 수출입 실적에 따르면 수출은 546억달러로 전년 대비 4.4% 감소했지만 수출 부진의 주 요인이었던 반도체 수출이 저점을 지나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무역수지도 큰 폭의 수입감소에 힘입어 9월에 37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고비를 넘겼다고 해서 우리경제가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한국경제의 근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개선책과 추진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력 추격지수 통해 장기 경제변동 재평가해야
선진경제를 향한 한국의 경제력 추격 좌표를 보여줄 수 있는 한국과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비교지표를 통해 경제의 핵심문제를 되짚어보자.
한국GDP를 미국 GDP로 나눈 대미 경제력 추격지수는 1991년 5.4%에서 외환위기 전인 1996년에 7.6%로 급상승했다가 외환위기를 맞아 4%대로 크게 하락했다. 그후 대대적인 경제개혁 추진 결과 2007년에는 8.1%로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6%대로 하락한 후 완만한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2014년에 최정점인 8.5%로 올라섰다. 그후에는 8%대 초반에서 정체했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부터 급락세로 돌아섰고 급기야 2022년에는 20년 전 수준과 같은 6.6%로 떨어졌다. 한국경제가 뒷걸음치는 위기국면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GDP 경제력 추격지수는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환율 세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바람직했던 시기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0년대 초중반이다.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1.7배 높았고 물가상승률은 26% 낮았으며 환율은 33.6% 하락했다. 안정된 물가 속에서 원화가치가 높아지는 가운데 성장률은 미국보다 크게 높았던 결과 추격지수는 3.7%p 높아진 것이다. 이에 반해 추격지수가 급락한 2018년과 2022년 기간에 성장률 차이는 15%에 불과했고 물가는 70% 정도 낮았으나 환율은 17% 상승했다.
혁신역량에서 미국과 큰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발자 우위를 발휘하지 못해 미국과 거의 같은 수준의 성장률에 머물면서 환율상승으로 값싼 경제가 되어 가는 모습은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추격지수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2000년대 초중반과 같이 원화가치를 높이면서 혁신과 생산성에 기초한 높은 성장률을 시현하는 경제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경제는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했지만 초반에만 반짝한 후 지금까지 진보와 보수 대립으로 20년을 훌쩍 날려버렸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미국 사례를 보자. 미국은 2010년대 초반 중국이 실력을 갖추기 전에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었지만 오바마정부는 8년 기간을 허송세월했다. 2012년 중국은 미국에 정식으로 신형대국관계론을 제안했는데 미국은 그 의미도 헤아리지 못하고 무슨 소리냐고 무시하면서 내치에만 힘썼다.
한국도 경제구조 변화를 요구한 외환위기의 신호탄을 단기간에 날려버리고 진보와 보수 간에 정권쟁탈을 하면서 말로만 혁신·녹색·창조를 외치면서 진영대립만 강고하게 만들었다. 경제는 중국특수와 반도체특수로 인한 착시현상에 빠져 무기력하게 오늘에 이르렀다. 그나마 천운인 것은 미중대립이 시작돼 첨단기술에서 중국의 한국 추월을 지연시키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한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금년 중 반드시 개최해야
당장 현안은 충격적인 R&D 예산 삭감을 되돌리는 것이다. 과연 시대의 흐름과 한국경제의 좌표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R&D 방향 조정, 특히 국제협력은 숙원과제로서 서두르지 말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올봄 대통령 방미에서 성사시킨 '한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를 연내에 성사시킬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