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화오션 하청 노사 단체교섭 합의가 의미하는 것
호황을 맞은 조선업에 인력난이 심각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23년 말까지 부족한 조선업 생산인력이 1만4000여명이라고 한다. 조선소에 일할 사람이 없는 이유는 직접 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때문이다. 20~30년을 일한 숙련노동자가 최저임금보다 고작 시급 1000원 정도 더 받는 저임금 때문에 불황기에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이 다시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젊은 노동자는 아예 조선소에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한데 윤석열정부는 '조선업상생협약'이라는 화려한 말잔치 속에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만 추진하고 있다. 조선소에 이주노동자 고용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하청노동자보다도 더 낮은 임금(최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가 노동시장 외부에서 대거 유입된다면 당장의 인력부족은 조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그에 따라 인력난 역시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될 것이다.
고용의 질도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조선소 생산의 중추를 담당해온 상용직 숙련노동자는 점점 줄어드는 반면 물량팀 아웃소싱 사회업체 등 다단계 하청고용 형태의 노동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을 좇아 우후죽순 생겨난 아웃소싱 사외업체가 하룻밤 사이 야반도주하듯 폐업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임금체불, 4대보험료 체납 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된다. 조선소에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정책으로 조선업 인력난 해결 난망
지난 9월 19일 한화오션의 하청노동자가 가입되어 있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 18개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타결하고 단체협약 조인식을 개최했다. 작년 여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며 51일 동안 파업투쟁을 해 한국사회에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저임금과 열악한 현실을 널리 알렸던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 올해는 단체교섭을 통해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불황기 삭감돼 없어진 연간 550%의 상여금 중 50%를 다시 지급하기로 한 단체협약의 내용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지만 한화오션과 한국 조선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다단계 하청고용이 아니라 상용직 하청노동자의 안정된 고용이 필요하며, 상용직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이 절실하다는 데 하청 노사가 공감하고 합의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다만 하청 노사가 아무리 의미있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원청 한화오션이 그 합의에 호응하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휴지조각이 될 수밖에 없다.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여러번 상용직 하청노동자 중심의 고용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혀왔다. 그렇다면 하청 노사가 상용직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 임금인상 처우개선에 합의한 만큼 한화오션도 그에 대해 진정성 있게 호응해야 한다.
한화오션의 진정성 있는 호응 뒤따라야
윤석열정부 또한 노동조합을 배제한 채 '조선업상생협약' 홍보에만 열을 올리며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한화오션 하청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제시한 해법과 방향에 대해 심도깊게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