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보며
중동의 화약고가 다시 터졌다. 전쟁은 시작에 불과한데 이스라엘 건국 이후 최대의 인명피해가 났다. 이 전쟁은 어떻게 전개돼 언제 끝날지 아직 예견하기 어렵다. 다만 하마스가 왜 이런 기습공격을 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주목할 만하다.
이스라엘이 2020년 아랍에미리트 등 아랍국가들과 수교에 성공하고 최근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와도 수교교섭을 추진하자 하마스는 자신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판단에서 대규모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절박한 상황을 자포자기적 공격으로 벗어나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탓으로 돌리는 분석도 있다. 거대한 감옥처럼 봉쇄해 내팽개쳐 둔 가자지구, 합의를 어기고 새로운 유태인 거주민들이 야금야금 정착해 가는 웨스트뱅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좌절케 만들었다. 이것이 테러단체인 하마스가 살아남은 토양이 되었다.
필자는 2021년 12월 이스라엘정부 초청으로 가자지구와 레바논 국경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의 이런 정책이 과연 지속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내일신문 2월 10일 칼럼, 이스라엘의 국가경영>
색다른 분석도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며 중동전문가인 토마스 프리드만은 CNN 인터뷰에서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요인으로 네타냐후 총리와 법무장관을 지목했다. 행정부의 견제세력인 대법원을 약화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 수주간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분열적 국정운영은 하마스에게 기습공격의 빌미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못지않게 취약한 안보환경에 처해있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석들이다.
글로벌 리더십 진공상태에서 벌어진 전쟁
9월 초 필자는 내일신문 칼럼에서 유엔의 리더십이 실종돼 세계 곳곳에서 무력분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후 한달 동안 두개의 새로운 전쟁이 터졌다. 9월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 땅을 점령해 10만여명을 축출했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온 이곳에서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의 손발이 묶인 상황을 이용해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Nature abhors a vacuum)'는 말대로 됐다. 그러나 이-팔전쟁은 진공이 아니라 쌓인 긴장이 폭발한 케이스이다. 지금처럼 글로벌 리더십이 사라진 상황에서 높은 긴장상태가 지속되는 곳은 언제든 전쟁으로 폭발할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희미하지만 희망으로 보이는 사건도 있었다. 두달 전 판문점에서 북으로 넘어간 트라비스 킹 일병이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중국에 감사를 표해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우리 정부가 북의 핵위협에 대해 취한 조치는 두가지다.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북에 대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1초도 기다리지 말고 응사하라"는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북이 넘어서는 안되는 레드라인을 분명히 하는 것은 일견 의미가 있어 보이나 평화유지에 충분조건은 아니다. 무력분쟁은 사소한 일로 시작해 에스컬레이터 된다.
북한이 행여 핵을 사용한다면 공언대로 북한정권을 끝장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정부는 이제 대결 상황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미국과도 북한문제를 논의해보자는 얘기를 꺼내야 할 것이다.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취할 수 있는 것들
캐빈 러드 전 호주총리는 저서 '피할 수 있는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피하려면 전략적 경쟁관계를 운용해 나갈 '외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킹 일병 송환을 위한 미중협력은 그런 외교의 시작일 수 있다. 북한 핵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협력적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만들어 나갈 좋은 소재다. 한미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이 이런 제의를 해 본다면 좋겠다.
몇년 전 유엔대표부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은 비공식 회의에서 한국 외교에 관한 개인적 의견을 물었다. 필자는 여야가 외교분야에서 만큼은 아주 기초적인 것이라도 합의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예를 들면 한미동맹을 잘 가꾸어 나감으로써 안보를 튼튼히 하기, 중국에 대해 과공은 피하되 불필요하게 모욕하지 않음으로써 실리적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엄히 대응하되 불필요한 자극은 하지 않기 등이었다.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이런 소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다.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