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분쟁 해결을 넘어 신뢰사회 구축으로

2023-10-11 11:04:14 게재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노동갈등이 노사에서 노노 간, 그리고 남녀와 세대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분쟁사건은 8월 말 기준 작년 대비 22% 정도 급등했다. 단체교섭 관련은 2%인 반면, 복수노조 53%, 고용이나 성차별 21%, 해고와 징계 등은 18% 늘었다. 분쟁이 증가한 이유는 쪼개진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경기후퇴와 디지털 전환으로 악화하고, 근로자의 권리의식과 불신이 커지는 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당사자들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립하면서 노동위원회가 바빠졌다. 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무료로 해결한다는 장점은 노동위원회의 판정이나 조정 서비스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나타난 것이다.

어떤 나라든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당사자와 사회 모두 손해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근본적인 차이는 신뢰와 협력에 기인한다. 신뢰는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일자리도 늘린다. 불신은 사람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대립을 일으킨다.

이에 따라 정부는 규제를 강화하게 되고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특권과 특혜에 의한 불평등은 커진다. 우리나라가 민관과 노사의 신뢰와 협력 덕분에 경제가 성장하고 중산층이 풍부해졌다가, 불신과 대립이 판치면서 저성장과 불평등의 덫에 빠졌고 중산층이 줄면서 균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개혁을 해야 하지만 불신이 크면 성공하기 어렵다.

확산하는 대안적 분쟁 해결(ADR)

노동위원회는 분쟁의 공정한 해결을 통해 신뢰사회 구축에 나섰다. 미국 등에서 보편화된 대안적 분쟁 해결(ADR)을 활용해 분쟁의 예방과 조기 해결에 성과를 내고 있다. 단체교섭의 결렬 이전은 물론 파업이 발생한 이후에도 사전·사후 조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 10개월 동안 216개 사업체가 혜택을 보았고, 공정 노사 솔루션(공솔) 도입으로 제도화했다. 또 커지는 차별과 괴롭힘 등 개별 갈등에도 당사자 중심의 신속·공정 해결을 위한 화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판정 이전의 화해 성립률이 올랐다. 또 직장인 고충 솔루션(직솔)을 도입해 예방적 화해 서비스를 제도화했다.

공정한 분쟁 해결과 신뢰 구축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분쟁 예방과 해결에 필수인 협상교육을 노사가 받을 수 있고, 화해·조정·중재 등 ADR을 지원하는 전문가를 키우며, 분쟁해결과 취약계층의 권리구제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볼 수 있도록 AI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노동위원회는 일반인을 위한 협상과 ADR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도입에 착수했고 판정문의 데이터화 등으로 디지털 노동위원회 구축에 나섰다. 노동위원회 설립 70년이 되는 내년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노동위원회의 전문성과 분쟁 해결제도의 효용성을 계속 높이도록 미국 등 선진국 분쟁 해결기구와 교류도 추진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의 조용한 내부 개혁

노동위원회는 내부개혁을 조용하게 진행하는 중이다. 사건의 급등은 위원 및 직원의 역량 강화와 업무 효율의 제고로 대응하고 사건처리도 분쟁 해결 서비스 제공 관점으로 바꾸고 있다. 관계기관과의 협력은 물론 현장방문과 홍보강화 등으로 노사 및 국민과 소통을 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