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건강한 '노인 돌봄'을 위하여 | 3부-① 노인돌봄 선진국 일본 나고야 현지 취재
기본 생활지원은 '자택' … 치매 프로그램은 '시설'
헬퍼가 매일 돌아가며 세탁·조리·청소 … 후생연금 받아 보험료 내고, 매주 1000엔 이용료면 기본생활 가능
일본 나고야는 9월 말인데도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됐다. 시모가모 야스코(81)씨는 나고야시 나카구 한 주택가의 10층 규모 100여가구가 사는 시영주택에서 5년째 생활하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나고야시주택공급공사가 관리하는 임대주택이다. 지은지 40년 이상 지난 다소 낡고 비좁은 주택이지만 부엌이 딸린 거실과 별도의 침실이 있는 7~8평 정도로 할머니 혼자 살기에는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정오, 기자가 할머니 집을 찾았을 때 백발의 노인 두명이 음식을 하고 있었다. 시모가모 할머니가 손수 피망과 두부 등을 후라이팬에 볶고, 돌봄 담당 헬퍼인 모리 준코(76)씨는 옆에서 돕고 있었다. 할머니는 "40년 이상 요리를 하는 직업을 했다. 요리가 즐겁다"고 했다. 모리씨는 "원래 가사 일을 좋아했는데 55세까지 직장에 다니다 개호서비스제도가 생기고 바로 이 일을 시작해 22년째 하고 있다"고 했다.
시모가모 할머니는 겉으로 보면 돌봄서비스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할머니의 하루 생활을 보면 평범한 노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새벽 4시쯤 잠에서 깨지만 자는듯 마는듯하다 아침 6~7시쯤 간단한 우유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아침에는 거의 매일 주변에 있는 절까지 산책을 한다. 왕복 1시간 정도의 거리인데다, 중간에 제법 긴 오르막길도 있지만 숨도 차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는 마라톤도 했다"면서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할머니가 자치단체의 생활지원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치매 때문이다. 그녀는 3~4년 전부터 유일한 친척관계인 조카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다는 망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계좌 비밀번호도 기억하지 못해 현금카드로 돈도 빼내지 못했다. 어떤 때는 집에서 먼 은행지점까지 가서 헤매는 것을 은행측에서 전화를 걸어와 귀가하는 소동도 몇차례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결국 2020년 상반기 지역포괄케어센터 상담과 의료진 진단 등을 거치는 심사를 통해 행동심리증상(BPSD) 판정을 받고 개호보험제도상 요개호 대상으로 확정됐다. 할머니는 이날 기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도 발음이 다소 어눌하고, 군데군데 기억이 흐리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생활지원 방문서비스 대상자로 인정받으면서 요일마다 다른 4명의 헬퍼가 자택을 방문해 1시간 가량 서비스를 한다. 조리(화요일) 시장보기(수요일) 청소(목요일) 세탁(금요일) 등 매일 주된 서비스의 내용은 다르다. 하지만 헬퍼가 자기가 맡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리씨는 "주로 할머니의 시장 보는 일을 돕기 때문에 식품 등의 유통기간도 확인하고, 지갑을 열어봐 돈을 쓸데 없이 낭비하지 않는지 본다"며 "시간 여유가 나면 청소나 세탁 등 다른 일도 하고, 이를 다음 담당자에게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고야시 공무원인 이노우에 타카히로씨는 "일본의 통합돌봄시스템에서 핵심인 지역포괄케어센터의 중추적인 역할은 케어매니저가 한다"며 "나고야시는 많게는 1인당 30~40명 정도의 노인을 담당하고 그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있다"고 했다. 케어매니저는 민간사업소 소속이지만 국가 자격증인 개호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경우가 많고, 시청과 지역센터의 교육이수 등 엄격하게 공적업무를 수행한다. 현장에서 고령자를 돌보는 헬퍼들도 인간적인 교우를 떠나 가정을 방문해 식사나 커피 대접을 받는 등의 행위를 절대할 수 없도록 엄하게 교육하고 있다.
시모가모 할머니의 생활에서 또 다른 즐거움은 TV시청이다. 특히 경마와 관련한 프로그램과 한국드라마를 즐겨 본다. 한국 배우 장근석을 가장 좋아한다는 할머니는 10여년 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 방문에 대해서도 세 차례로 기억하기도 하고, 언제 갔는지도 다소 혼란스러워했다. 이처럼 치매 초기단계의 할머니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조치는 그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주 월요일 인근에 있는 노인복지시설에서 아침 9시부터 7시간 정도 지내는 '데이(day)서비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목요일은 격주로 간다. 복지시설에서는 치매 진행속도를 늦추는 각종 프로그램과 신체적 노쇠화를 방지하는 운동프로그램 등을 함께 한다. 집에서 하기 어려운 목욕 서비스도 시설에서 받는다.
할머니는 유일하게 불편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목욕이라고 했다. 현재 방문서비스 프로그램에 목욕을 돕는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정식 욕조는 폭이 좁고 깊은데 키가 150㎝도 안되는 할머니가 앉은 채로 탕에 있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번은 욕조에서 잠이 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욕조에서 잠이 들어 그대로 탕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으로 노쇠화가 더 진전되는 상황을 살피며 더 높은 수준의 신체개호가 필요한지 등을 계획하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이 케어매니저이다. 스즈키 준코 케어매니저는 "현장 돌봄 인력과 소통하면서 집에서 받는 서비스와 복지시설에서 예방프로그램을 배치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라고 말했다. 스즈키씨는 또 "노인의 권리, 주택 개보수, 지역주민과 관계 등 개호보험제도 이외의 영역에도 관심을 두면서 생활을 지원한다"며 "후생노동성도 사회적 자원을 돌봄프로그램에 효율적으로 담도록 권장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할머니 혼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어디서 나올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연금제도가 일찍 도입된 일본은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노인들이 대체로 연금을 수령한다. 시모가모 할머니도 42년간 요리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적립한 연금에서 월 10만엔(약 90만원) 조금 넘는 급여가 나온다. 이 돈으로 월 3만5000엔(약 31만5000원) 가량의 주택 임대료를 지급하고, 소득에 따라 부담하는 개호보험료 연간 3만2000엔(약 28만8000원)을 납부하고 있다.
요개호자로 인정받으면 서비스 주체인 지역내 사업소와 개별적으로 계약관계를 맺는다. 할머니의 경우 1시간 정도의 생활지원 서비스를 받으면 249엔(약 2240원) 가량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1주일에 1000엔(약 9000원) 정도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나고야시 인근 시골에서 7남매의 여섯째로 태어나 형제들 모두 사망하고, 이혼후 자녀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 시모가모 야스코 할머니. 그녀는 일본내 수백만명에 이르는 전형적인 여성 고령자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돌봄서비스의 최전선에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70대 후반의 또 다른 노인이 친구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생의 길을 이웃나라 일본의 돌봄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모리 준코씨는 "90대 인데도 헬퍼를 하는 사람을 봤다"며 "나도 80세가 넘어서도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