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융합촉진법, 역주하는 신기술 담을 큰 그릇

2023-10-12 11:19:09 게재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온라인광고에 뒤처졌던 옥외광고가 디지털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은 뒤 연 7~8%씩 성장하는 전성시대를 맞았다. 버스 정류장이나 건물 외벽 등에 설치된 화면에서 뉴스와 광고를 접하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디지털 옥외광고를 사람들이 얼마나 보는지 그 효과를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범죄예방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카메라를 설치해 운영할 수 있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부터는 일시적인 통계처리에도 영상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이용자 분석에 기반한 광고 효과 측정뿐 아니라 재해재난 예방, 제조현장 공정 분석 등에도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신기술은 종종 양날의 검에 비유된다. 신기술이 가져다줄 편익이나 부가가치가 클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안전 환경 개인정보보호 측면의 잠재적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상충관계는 결국 동태적인 기술과 정태적인 규제 사이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신기술은 저만치 성큼성큼 달려가는데 이에 대응하는 규제는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으니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역주하는 물고기를 비좁은 어항에 가둬 둔 형국이다.

동태적 기술과 정태적 규제 간 엇박자

2019년에 시작된 산업융합 규제 샌드박스는 기술과 규제 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지난 4년 반 동안 400여건의 실증 특례, 임시 허가, 적극 해석이 이뤄지면서 많은 기업이 막혀 있던 시장진입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디지털 옥외광고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도 규제 샌드박스 덕분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개인정보위원회가 규제 샌드박스의 실증 특례를 적용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 규제완화까지 끌어낸 것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기업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한시적 규제 특례가 영구적 규제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역주하는 물고기에 맞게 더 큰 어항으로 바꿔주는 작업, 즉 관련 법령을 정비해 신기술의 적용성을 증가시켜주어야 하는데 그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제정비가 늦어지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7월에는 산업융합 촉진법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정부의 규제 정비 의무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안전성 문제가 없는 임시허가의 경우 기존에는 특례 유효기간이 종료되기 전까지 관계 부처가 법령 정비에 '착수'하도록 했지만, 개정안에서는 법령 정비를 '완료'하도록 했다.

또 실증특례는 유효기간이 끝나기 최소 6개월 전까지 안전성 검증 계획을 세우고, 검증이 완료되면 60일 이내에 법령 개정에 나서야 한다. 최근 세계 주요 국가들이 첨단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우수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지원 인프라 확충에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얻으려면 유연한 제도 마련과 신속한 규제 정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 친화적 제도 마련에 매진

국회에서 논의될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은 빠르게 역주하는 신기술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어항, 기업이 활동하기에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신기술이 기업의 성장, 그리고 국민의 편익으로 빠르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혁신친화적인 제도 마련에 더욱 매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