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시민사회의 혁신 기획이 절실한 이유
'시민사회의 혁신 기획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포럼이 열려서 가보았다. 이른바 '제도적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1987년 6월항쟁을 기리는 모임의 월례포럼 자리였다. 답을 찾기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온 터라 기대를 걸고 참석했다.
지금은 잘 얘기하지 않지만 시민사회는 한때 제5부라고 불렸다. 입법 사법 행정의 3부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가진 언론을 제4부라고 한 것에 이어서 붙인 별명이다. 권력 없는 시민사회에 '제5의 권력'을 부여한 데는 1부 입법, 2부 사법, 3부 행정의 독주나 잘못을 4부 언론과 5부 시민단체가 견제하고 바로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돼 있다.
그런 상황이 요즘 실제로 도래한 듯하다.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여파가 사법불신으로까지 이어졌다.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3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영으로 나뉜, 또는 갈라쳐진 언론도 신뢰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1~4부의 총체적 실패 국면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기댈 데가 시민사회여야 할 텐데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민사회마저 신뢰가 바닥이다.
제3부가 거꾸로 제5부 견제하는 상황
제5부의 쇠락 요인으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제3부의 집중견제다. 포럼에서도 '정부의 시민사회 활동의 정당성에 대한 왜곡과 폄훼, 근거 없는 악의적 공격을 통해 시민단체에 대한 편향적 인식을 확산시킨 것'이 최근 시민사회를 둘러싼 외부환경 변화의 하나로 거론됐다. 이로 인해 시민사회에 전반에 대한 공적불신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의 '시민단체 때리기'가 지나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시적인 부분에서 거시적인 부분까지 전방위적일 뿐 아니라 단도직입적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조금 사용과 관련해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로 매도하고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그것을 선전했다. 게다가 '민주주의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온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이념 공세 대상에 포함했다. '시민사회=이익집단=반국가세력'이라는 식이다.
그렇다고 시민사회 쇠락을 정권 탄압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도 더 큰 외부적 환경과 내부적 요인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포럼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주의의 급속한 퇴행을 첫번째로 꼽았다. 이로 인해 시민사회단체 의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한정된 활동가 자원으로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시민사회의 근본적 토대가 급속히 약화한 점도 물론 지적했다. 시민사회 활성화 관련 법 제도 정책 및 지자체 조례가 퇴행하거나 폐기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가장 고민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내부적 환경, 즉 '사람'이라고 했다. 신규회원 확충과 활동가 충원이 갈수록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회원 확보가 절실해졌다. 신규 진입 활동가수는 크게 줄지 않았지만 1~3년 내 이직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개선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의 여건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지금 시민사회를 둘러싼 여러 환경으로 보아서는 뚜렷하게 내놓을 혁신방안이 없는 형편이다.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문제제기자인가 문제해결자인가. 또는 이슈리더인가 기획자인가. 활동가의 직업적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직업인인가 운동가인가. 시민단체 회원들은 젊어질 수 있는가. 현재 시민사회를 둘러싼 외부환경을 위기로만 규정할 것인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그룹과 의제를 두고 협력할 수 있는 유연성과 전략은 있는가. 질문하자면 끝이 없다.
근본적 질문 놓고 치열한 고민을
시민사회는 2016년 촛불항쟁으로 권력교체까지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로 탄생한 '촛불정권'은 개혁의제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채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스스로도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제5부로서 제1, 3부를 제대로 압박·견제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깊은 회한과 반성, 그리고 스스로 앞서 제기한 근본적인 질문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혁신의 실마리가 찾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