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위협 소화설비가스 이대로 괜찮을까?

2023-11-03 10:58:30 게재

이산화탄소 노출 인명사고 끊이지 않아

할로겐화합물 열 가하면 유독가스 생성

설치 장소에 성분·행동요령 표시 필요

지난달 9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 소화약제 중 하나인 할로겐화합물 소화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이 가스가 인체에는 해가 없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심각한 위험물질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3일 소방청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신림역 가스누출사고는 복합쇼핑몰 타임스트림에서 소화설비 오작동으로 누출된 가스가 연결된 역사로 흘러들어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누출신고 직후 출입을 통제하고 19분 동안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켰다.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탓에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누출된 가스소화설비가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경고한다. 쇼핑몰이나 지하철역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불이 나 가스가 분출되거나 오작동으로 누출될 경우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소방청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가스소화약제 누출로 인한 인명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산화탄소(CO2) 소화설비인데 올해 광주에서만 두 번이나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1월 13일에는 광산구 쌍암동 한 오피스텔 주차타워에서, 6월 22일 서구 치평동 한 오피스텔에서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광주 사고 때는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지난해 11월 대전 서구 갈마동에서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발생한 누출사고 때는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사고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경남 창원시 DL모터스 공장 사고 때는 1명이 숨지고 3명이 경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1월 고용노동부와 소방청이 조사해 발표한 이산화탄소 소화가스 누출사고 현황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건이 발생해 14명이 숨지고 31명이 다쳤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할로겐화합물 계열의 소화약재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수소염화불화탄소 블랜드A(HCFC BLEND A)'는 염소(Cl)가 포함돼 있고, 환경오염물질로 알려져 전세계에서 퇴출되고 있지만 가격이 낮은 탓에 우리나라만 대량 유통되고 있다. 2019년 11월 5일 경기 용인시 한국지역난방공사 동백가압장에서 이 소화약제가 누출돼 작업자 2명과 소방대원 1명이 다쳤다. 2014년 11월에는 서울 종로구 우정총국 건물에서 전시실을 관람하던 한 초등학생이 실수로 소방시설 스위치를 눌러 이 소화가스가 누출,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다른 할로겐화합물 가스도 실제로는 인체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5분 이상 노출됐을 때는 심장발작 등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할로겐화합물에 열이 가해지면 인체에 치명적인 불화수소(HF) 등 유독물질을 발생시킨다. 한국산업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불화수소는 최고노출기준을 3ppm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화재로 할로겐화합물이 가열될 경우 허용 기준보다 수백 또는 수천배 많은 양의 불화수소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국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 중인 가스소화설비에 대한 안전성 검증과 명확한 대응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택구 소방기술사는 "소화약제의 위험성을 정확히 분석해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미 설치된 곳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누출사고 시 사람들이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표지판을 통해 안내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가스소화설비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유재윤 소방기술사회 가스계부과위원장은 "전기시설 등 물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가스소화설비를 쓸 수밖에 없다"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대체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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